비욘드포스트

2024.03.29(금)

연구개발 열정, 화학·전자 성장
자연인, 인재육성 및 공익활동

(사진=LG그룹)
(사진=LG그룹)
[비욘드포스트 강기성 기자] 구자경 LG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나이 향년 94세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창업주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이던 1950년 스물 다섯의 나이에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으로 LG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이 62세를 일기로 1969년 12월 31일 타개함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45세가 되던 1970년 1월9일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장에서 20년간 생산현장을 지키다 불과 1년 수 개월 만에 부친의 유고로 마음의 준비 없이 회장 자리에 오른 구 명예회장은 이후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과 21세기 선진 기업 경영을 위한 혁신의 시대를 펼쳤다.

또 그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자율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의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주도한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지금과 같은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 연구개발에 열정 쏟아 화학·전자 산업강국 도약
특히 구 명예회장은 ‘기술입국’의 일념으로 화학과 전자 분야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수많은 국내 최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LG의 도약과 우리나라의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구 명예회장은 늘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쳐댈 때에도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며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연구개발을 중시하던 구회장은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서 전사적 차워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하도록 했다. 또 산업디자인 분야 육성을 위해 1974년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실을 발족시켰다.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의 결과로 금성사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영상미디어와 생활가전 분야에서 수많은 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내 최고의 가전 회사로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재계의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은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을 공개해 기업을 자본 시장으로 이끌어 내는 역할을 했고, 국내 최초로 해외 생산공장을 설립해 세계화를 주도하는 등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질적인 성장 사례를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 자연인과 인간애(愛)
한편 구 명예회장은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진하게 물려주어 대한민국 기업가에 성숙한 후계 승계의 모범사례를 제시했다. 또 57년간 이어온 구씨와 허씨 일가의 동업관계 정리도 한치의 잡음없이 마무리했다.

이외에 교수 해외연구. 학교설립과 전자도서관, 과학관 등 인재양성에 각별한 열의를 보였고, LG인재 육성의 요람인 ‘인화훤’을 개설했다. 1991년에는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사업을 체계적으로 펴고자 ‘LG복지재단’을 설립해 지방자치단체에 사회복지관과 어린이집을 건립했다. 또 연암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2000년 LG아트센터를, 건립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데로 힘썼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냈고,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하는 열정으로 충만한 여생을 보냈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자로의 업적은 물론 은퇴 후의 삶까지 재계의 귀감으로 존경을 받아 왔다.

슬하에 장남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G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뒀다. (부인 고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타계)

강기성 비욘드포스트 기자 news@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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