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3.29(금)

한진택배 시행…롯데택배 내달, CJ대한통운 검토
미리 태그를 찍은 뒤 10시 이후에 배달 등 부작용
“분류작업시간을 당기는 것이 선결돼야”
정부, 분류인력 충원에 '사회적 합의' 필요

[비욘드포스트 강기성 기자] 택배기사의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번져가는 가운데 한진택배가 심야배송을 금지하는 대책을 내놓고 시행하고 있다. 롯데택배는 12월, CJ대한통운도 이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심야배송 금지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순 근무시간 줄이기에 그쳐서는 안되고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 충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해석이다.

16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한진택배는 지난 11월 1일부터 오후 10시 이후의 배송을 금지하고 있다. 한진택배의 경우 기사가 10시 이후에 물건 배송을 찍으면 본사나 대리점에서 연락이 온다. 10시 이후에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택배사 심야배송 금지, 부작용 ‘솔솔’…“분류인력 충원이 급선무”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심야배송 금지로 인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한진택배의 경우 택배기사가 10시 이전까지 이후 물건들을 모두 배송완료된 것으로 찍은 뒤 이후 배송하게끔 하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10시 이전에 배송완료됐다는 문자를 받은 고객들은 10시 이후 시간에 실제로 물건을 수령하게 돼 클레임이 제기되는 경우도 속속 나온다. 또 본사에서는 기사들에게 대형계약 업체 VIP고객 물건들을 먼저 배송하라는 강요도 하고 있다.

택배 물량이 동일하다고 가정해보면, 업무시간을 제한한다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동일한 인력이 택배 분류를 하고 배송할 경우, 주 5일제 근무나 심야배송을 금지하게 되면 택배 물량이 쌓여 이월되는 물량만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 기사들의 수입이 줄어들어 반발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택배업계에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분류작업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심야영업 제한으로 업무시간을 줄여도 택배 분류시간이 지체되면 늦게까지 일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이 늦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라며 “물량을 배송하려면 분류작업이 빨리 끝나야 하는데 실제 빠르면 1, 2시 늦으면 3, 4시에 배송을 시작하니까 밤늦게까지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심야업무 제한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분류작업부터 손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택배 물량의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분류 작업 등 인력 충원 없이는 현실적으로 택배기사의 작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사진=뉴시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27일 오전 서울 한진택배 마포택배센터를 방문해 택배 분류작업 현장을 시찰하며 택배노동자 근로실태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27일 오전 서울 한진택배 마포택배센터를 방문해 택배 분류작업 현장을 시찰하며 택배노동자 근로실태 등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 12일 정부가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에서는 되려 분류작업 문제를 키운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이날 대책에서 분류작업 문제는 노사간 이견이 크기 때문에 의견수렴을 거쳐 관련 내용을 표준계약서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 등 일부 택배사가 분류 인력충원을 발표한 상태에서 오히려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버린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일정부분 정부 주도의 예산 지원이 있더라도 이조차 부담하기 어려운 업체들은 개선 없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노동시간·일수단축 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정부 역할을 제한했다. 노사 합의가 안되면 정부의 방안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인력 충원문제를 내달 구성될 ‘택배기사과로방지대책협의회’ 논의 과제로 남겼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대형 택배사 한두 곳 수수료를 높이거나 노동시간 제한정책을 내놓는 방식으론 힘들고, 택배업체 전반의 합의를 봐야한다”며 “사회적 기구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와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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