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3.29(금)

대만·유럽에서도 비판 이어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모습. (사진 = 뉴시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모습. (사진 = 뉴시스)
[비욘드포스트 한장희 기자] 미국이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의 보조금 지원 세부 지침을 둘러싸고 전세계 반도체 업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대미 통상 이슈 컨트롤타워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일반적이지 않다”며 우려를 표했고,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안전장치 마련에 나섰다.

10일 산업부에 따르면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날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준비된 일정을 소화한다. 안 본부장은 이번 방미 일정에서 미국 상무부, 백악관 등 미국 정부 측 고위급 인사와 미국 의회, 주요 싱크탱크 등을 만나기로 했다.

안 본부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댈러스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양국 정부와 산업계가 그동안 반도체 공급망을 같이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번 지원 기준은)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며 “우리 산업계의 특수한 상황도 많아서 그런 것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안 본부장의 방미 일정은 급하게 정해졌다. 지난달 28일 미 상무부는 반도체지원법 인센티브 프로그램 중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재정 인센티브의 세부 지원계획을 공고했다.

이에 대해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일반적인 외국인 투자 보조금 지급과 전혀 다른, 일반적이지 않은 조건들이 많이 들어있다”며 “기업들은 경영 불확실성과 경영 핵심 내용에 대한 침해나 미국 투자비용 증가라는 세 가지 요인 때문에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수령, 또는 미국 투자에 대한 매력이 낮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이번 조건과 관련된 불확실성과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조항들이 협약 과정에서 상당부분 완화되고 해소되도록 정부가 적극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안 본부장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안 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실제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 최대한 여지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며 “사업 상황을 설명하고 실제 (한국 기업과) 협의하는 단계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최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세계 반도체 업계 분위기도 ‘해도 너무하다’는 분위기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백악관은 (반도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추가적인 정책 목표들을 법안에 덧붙이고 있다”며 “모든 이익 단체에 ‘싸구려 선물’을 뿌려주는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지난해 8월 모리스 창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 ‘반도체법이 순진하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모리스 창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함께 이번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꼽히는 대만 TSMC의 창업자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TSMC가 미 보조금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돈으로 반도체 제조업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라며 “돈으로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전자 제조업에 끼어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것”이라고 직설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미국 내에서도 반도체법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에 대선을 앞두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표심을 얻는 데 성공하자 이번엔 반도체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우리 정부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이 장관은 “앞뒤가 아니라 옆도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국내 반도체 산업 강화를 염두에 둔 말로, 현재 우리 반도체 기업이 처한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은 아니다.

국내 기업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정부는 여러가지 옵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보조금을 포기하는 방법도 한 가지 옵션으로 보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는 조금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미국을 설득할 카드와 관련 “보조금을 주는것과 관련된 조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투자를 하고 안 하고, 많이 하고 적게 하고, 빠르게 하고 늦게 하는 등의 기업 전략은 있을 수 있다. 서로 협상할 여지가 꽤 많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jhyk777@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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