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5.02(목)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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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포스트 조동석 기자]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는다. ‘저달러·저유가·저금리’ 3저(低)가 주요 요인이었다. 우리나라 해외원유·외자·수출에 크게 의존하며 경제발전을 이어왔다. 3저는 비용을 줄이는 계기가 됐고, 엔고는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특히 1985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영국으로 구성된 G5의 재무장관들이 미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합의한다. 이게 플라자합의다.

'플라자 합의'가 채택되자 독일 마르크화는 1주 만에 달러화에 대해 약 7%, 엔화는 8.3% 각각 오르는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달러 가치는 급락했다. 덕분에 미국 제조업체들은 달러 약세로 높아진 가격경쟁력으로 1990년대 들어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한 반면 일본은 엔고로 버블 붕괴 등의 타격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팬데믹 이후 3고(高)가 한국경제를 저성장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달러’가 그것이다. 호황을 누렸던 3저 때와 다른 상황이 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정희수 연구위원은 ‘팬데믹 위기와 구조적 취약성’ 보고서에서 ‘미국 Fed가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75bp 인상)을 단행하고 향후 추가 인상을 예고하는 등 글로벌 긴축정책이 가속화되면서 경제와 금융시장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3高 1低(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것”이라며 “팬데믹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4低(저금리, 저물가, 저환율, 저성장) 현상이 지배적이었으나, 팬데믹 기간 동안 풀린 유동성과 러‧우 전쟁, 고유가 등의 영향으로 올해 급격한 인플레가 시작됐고, 이를 막기 위한 긴축정책이 추진되면서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가계부채, 한계기업, 부동산 PF 등 구조적 취약성의 위험 정도가 심각하다.

■ 시중 유동성, 글로벌 금융위기의 2배 이상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상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의 규모에도 큰 차이를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시중 유동성의 증가폭은 191조원인데 반해 이번 팬데믹 위기 때는 422조원을 기록했다.

대규모 유동성이 풀리면서 예금 등 안전자산보다는 부동산, 주식 등 실물 또는 투자자산으로의 쏠림현상이 과거에 비해 더욱 심해졌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권의 구조적 취약성을 대표하는 가계부채, 한계기업, 부동산 PF 등 3개 영역의 위험도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선, 가계부채는 2011년 916조원에서 2022년 6월말 현재 1,869조원으로 지난 10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평균 60조원 규모로 증가한 것에 비해 팬데믹 위기 때는 연평균 120조원 이상 증가했다.

시중금리 급등으로 연초에 비해 대출금리가 2배 이상 상승하면서 차주의 이자상환액도 더욱 커졌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변동금리(잔액 기준) 비중이 78.4%를 차지하고 있어 금리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빠른 금리 상승과 경기둔화 우려감으로 주택경기가 위축되면서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 축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계기업도 2011년 2,604개에서 2021년 3,572개로 계속 증가했다. 한계기업은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으로 위기 시 도산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 부실기업이다. 급격한 금리 상승과 함께 이자상환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비해 한계기업 수가 크게 증가한 것도 문제지만, 팬데믹 위기 때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으로 연명한 통계로 잡히지 않는 한계기업이 많아진 것도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부동산 PF 규모는 2011년 51조원에서 2022년 6월말 현재 112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담보가치의 안정성이 낮은 증권사, 여전사,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 중심으로 부동산 PF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정 연구위원은 “연초만 하더라도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컸으나, 러‧우 전쟁과 미국발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경기침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금융권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는 폭탄 돌리기식 임기응변 대응에서 벗어나 디레버리징을 감수하더라도 조정이 필요하다”며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인 ‘옥석 가리기’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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