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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뭐든지 다 외주 준다

입력 2026-09-30 06:41

구글 이미지 캡쳐
구글 이미지 캡쳐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아파트 현관문 앞에 검은색 커다란 봉투가 있습니다. 봉투 안에는 먹다 남은 음식과 플라스틱 용기, 유리병, 소형 가전제품까지 다양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단 투기한 것이 아닙니다. 쓰레기 수거 대행서비스에 맡긴 것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버리고 플라스틱과 깡통, 유리병과 종이류를 분리해서 배출하는 게 귀찮고 힘들어 이렇게 수거 대행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번 이용한 사람은 그다지 비싸지 않는 데다 스트레스 없이 그냥 내놓기만 하면 되니까 편리하다고 만족해 합니다.

이런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용자 규모는 가파르게 느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용자들도 처음엔 게으른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다른 일에 쓸 수 있으니 그렇게 손해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쓰레기 처리하는 시간과 수고를 산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가사노동의 외주화’가 쓰레기 처리 영역까지 넓어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외주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책이나 논문, 보고서를 요약해 달라고 하고, 여행계획을 짜라고 시키고, 고민을 들어주는 것을 넘어 분석과 해결책까지 요구합니다. 심지어 마케팅 전략을 짜서 그에 맞는 실행계획까지 주문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결론에 도달했다”는 말은 이제 들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내가 지금 AI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 단순 작업인가, 아니면 생각 자체인가?’ 예를 들어 고민이 생겼을 때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건 사고를 돕는 일입니다. 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좀 알려 줘.”라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가치관을 확인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만드는데 그런 과정을 건너뛰고 답만 받아들인다면 판단하는 근육을 사용할 기회를 잃고 마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처리하게 하고, 청소를 대신 시키고, 세탁물을 맡기는 건 나의 삶을 빼앗기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간과 수고를 더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한다면 그것도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후회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까지 누군가에게 맡긴다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이건 시간을 아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 AI에 맡기고 어디서부터 스스로 생각할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삶에서 끝까지 외주화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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