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4.27(토)

방탄소년단(BTS)의 한글 혁명

한글연구소장 임성순
한글연구소장 임성순
[한글연구소장 임성순] 동북아 삼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애증의 관계였다. 황하 문명을 일으킨 중국은 동북아에서 거의 모든 기간 압도적인 패권 국가였다. 조선은 500여년 간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는 사대(事大)의 예를 갖췄다. 반면에 중국과 조선은 일본을 소위 왜국(倭國)이라 불렀는데 왜국이란 약탈, 해적질을 일삼는 오랑캐를 말한다.

오천 년 역사의 찬란한 중국 문명에 균열이 생긴 것은 19세기 말부터였다. 영국을 위시한 서구세력에 굴욕과 치욕을 당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에게 상당한 영토를 유린당하는 수모를 맛보았다. 한갓 오랑캐에 불과했던 일본에게 난도질을 당한 것이다. 일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우리는 중국과 조선의 몰락이 서구문물을 늦게 받아들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1543년 포르투갈 상인과 교류를 시작으로 서방세계에 눈을 떴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단숨에 강대국으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서구와의 접촉이 일본만 있었던 것일까? 섬나라보다는 대륙국가가 훨씬 더 서구문명과의 접촉이 잦았다. 비교도 할 필요도 없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는 법이다. 당시 중국과 조선에게 서구문명은 돼지의 진주목걸이에 불과했다. 일본은 무엇이 달랐는가?

일본의 혁명은 이미 9세기부터 시작됐다. 중국의 위대한 발명품 한자를 쓰는 일본은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9세기 가나 문자를 만들었다. 현대 일본 문자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원조였던 가나 문자는 일본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우리도 향찰, 이두를 가지고 우리말을 표현했지만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상 자기 문자를 가진 일본인의 지적 수준은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17세기 일본인 문맹율은 30% 미만이었다. 반면에 조선인은 1910년 90%, 중국인은 1949년 80%가 넘었다. 일본은 오랑캐가 아니라 이미 선진화된 문명국가였다.

조선은 한 줌도 안 되는 ‘양반을 위한, 양반에 의한, 양반의 세상’이었다. 3% 미만의 양반을 위해 중인, 상민, 천민이 존재한 것이다. 양반에게 조선은 무릉도원이나 다름없었다. 아무 일 안 해도 대대손손 부자로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납세의 의무도, 병역의 의무도 없었다.

다수를 이루는 노비를 비롯해 무당, 백정, 승려, 광대 등은 천민계급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다. 이들은 대대로 천한 계급이 세습되는 것은 물론이고 천민과 결혼하는 사람은 자동으로 천민계급으로 전락했다. 접촉하면 감염되는 좀비와 같은 존재였다. 조선은 사실상 노예국가였고 우리 대다수는 그들의 후손이다.

양반 사대부는 백성의 피로 빚은 아름다운 술과 백성의 기름으로 만든 아름다운 음식을 즐겼다. 사대부는 무노동으로 남는 시간에 멋들어진 풍류를 즐겼다. 말을 타고 활쏘기로 체력을 단련하였다. 거문고를 타면서 가곡, 가사, 시조를 노래했다. 바둑과 장기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서예나 사군자 그리기로 교양을 쌓았다.

왕실과 양반을 대신하여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다하던 상민은 감히 사대부의 풍류를 즐길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명절이나 농한기(農閑期)에 천민인 광대가 상민의 예능 욕구를 충족시켰다. 탈춤, 인형극, 줄타기, 판소리 등을 선보인 광대는 대중을 위한 예술가였다. 백성들이 양반탈을 쓴 광대의 풍자와 해학을 즐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의 문자는 일본에 비해 500여년 뒤진 1446년 반포되었다. 궁녀 등 여성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퍼지던 한글은 500여년이 지난 1945년부터 본격적인 한글 혁명이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한글은 한국인을 단숨에 최고의 지성인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초신성과 같은 대폭발이었다. 해방 직후 80%에 달했던 문맹률은 1959년 22%로 떨어졌다. 한강의 기적과 한류열풍은 우연이 아니다. 80%의 문맹률은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와 일제 식민지 통치의 조선 근대화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2020년 현재 한국 대중문화는 전 세계를 한류로 물들이고 있다.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은 수억 명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다. 조선 시대 천대받던 광대들의 멋진 반란이다. 봉준호 감독이야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한류스타들의 병역특례가 화두이다. 그중에서도 방탄소년단의 군문제가 가장 뜨겁다.

방탄소년단 병역특례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위선양과 경제적 가치를 말한다. 반대론자들은 다른 젊은이들과의 형평성, 공정성 문제를 삼는다. 나는 여기에서 유교의 뿌리 깊은 잔재를 본다.

예술 분야(음악, 미술, 무용) 병역특례제 기준은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 또는 5년 이상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에 한정하고 있다. 묘하게 이들 분야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기던 분야이다. 지금 한류를 이끄는 대중문화의 주체는 조선 시대 광대 후손들이다. 500년간 천대와 멸시를 받던 이들에게 2020년에도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같은 고전음악을 하는 것은 현대판 양반계급인 부유층이나 할 수 있다. 흙수저의 길이 아니다. 병역특례는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이다. 현대판 사대부가 아직도 병역특례를 독점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춤, 메세지에 수억 명의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생을 포기했던 한 미국여성이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새로운 삶을 찾았다는 영상이 화제다. 전 세계가 방탄소년단에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진정성 덕분이다. 지금까지 병역 특례를 받은 예술인 전체를 합쳐도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의 10%도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방탄소년단을 광대 혹은 딴따라 취급이나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가장 근본적인 인기 비결은 바로 한글이다. 한글은 문화의 용광로(melting pot)이다. 방시혁 프로듀서와 방탄소년단의 창조성은 한글에서 비롯한다. 한글이 낳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 방탄소년단은 한글을 전 세계에 퍼뜨리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한글의 위대한 혁명이 그들로부터 시작됐다. 아마 세종대왕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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