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5.21(화)

타업체 판매가 보다 높은 공급가로 신생 유통업체 길들이기
유통업계 “쿠팡이 아니라 LG생건이 ‘갑’에 가까워”

대기업 횡포에 32억 과징금 떠안은 쿠팡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쿠팡이 경영간섭, 판촉비 전가 등 공정거래법 및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협의에 대한 시정 명령 및 과징금을 부고한다고 밝혔다.

쿠팡은 지난 2017년 생활용품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점유율 36.5%로 업계 1위)를 가진 LG생활건강을 상대로 이른바 ‘갑질‘을 한 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LG생건이 유독 쿠팡에만 비싼 가격에물건을 공급하면서 벌어진 일로, 맥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쿠팡이 피해자에 가깝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LG생건은 쿠팡이 대규모유통업자로서 반품금지조항을 위반했으며특정 제품을 다른 유통사에 공급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등의 혐의를 들어 지난 2019년 공정위에 쿠팡을신고했다.

공정위가 LG생건 측의 주장 일부를 받아들인 것은 쿠팡이 유통업계에서막강한 고객기반과 영향력을 가진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가진 업체라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쿠팡과 LG생건, 어디가 ‘갑’일까?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양자간의 역학관계를 볼 때 쿠팡을 마냥 ‘갑’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종합쇼핑몰이라면 반드시 갖춰야하는 ‘페리오‘, ‘엘라스틴‘, ‘테크’ 등 유명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생활용품점유율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납품업체 LG생건이 쿠팡보다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얘기다.

유통시장에서 쿠팡의 영향력이 매년 커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소매시장전체 점유율을 보면 쿠팡의 점유율은 7~8%에 그친다. 때문에유통업자로서 아직 절대적인 지위를 행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LG생건은 지난 2019년 4월에 쿠팡과의 거래를 중단했지만, 같은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모두 전년 대비 증가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대기업인 LG생건과 비교해 쿠팡에 ‘갑질 프레임‘을 씌우기에는 아직 쿠팡의 몸집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쿠팡은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수익을 남기지 않고 꾸준히 재투자하기 때문에 지난해 기준 5,842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한 이후로 매년 적자를 기록해 누적 적자가 약 4조5,000억원에 이른다.

반면 LG생건은 2018년이후로 매년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내고 있는 국내 몇 안되는 대기업이다.

유통업계 “LG생건이 쿠팡에만 높은 공급가 요구해 벌어진 일”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은 ‘을’의 입장에 있는 쿠팡이 ‘갑’인 LG생건의 부당한 공급가격 차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는 시각도 있다.

쿠팡에 따르면 LG생건은 3~4년전쿠팡이 직매입 거래를 도입할 당시 쿠팡에만 타 채널보다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했다. 일례로 LG생건이 타 유통채널에 공급한 한 상품의 공급가는 5,428원이었던반면, 같은 제품을 쿠팡에 납품할 때에는 두 배 가까운 가격(최고 10,217원)을 받았다. 또다른 상품의 경우 타 업체에 10,470원에 납품한 반면 쿠팡에는 17,040원에 납품했다. 이는 명백한 차별이나 부당한 거래로 볼 수 있다. 이는 지금보다 시장점유율이 훨씬 낮고 신생 업체였던 당시 이커머스 업체들에게 대기업 계열 제조사들이 하던 관행이다.

쿠팡의 2017년도 전체 소매시장 점유율은 1.7%에 불과했다. 1990년대 중반 대형 할인점이 처음 들어설때에도 대기업 제조회사에서 납품 중단이나 판매가격 유지 등을 요구했던 사례가 있다.

이는 유통업계 통념상 쿠팡과는 사실상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쿠팡은 이에 공급가격 조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갑질 당한 쿠팡, 중소기업과 상생으로 돌파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LG생건과 쿠팡의 거래가끊기면서, 쿠팡은 제품력을 갖춘 신생 업체 발굴로 맞대응했다. 이에여러 중소업체들이 큰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사례가 샴푸와 바디워시 등 생활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쿤달‘이다. 쿤달의 2020년도매출은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뛰었다. 2014년 설립된중소업체 오가닉K 역시 세탁용품 및 주방세제 분야에서 같은 기간 매출 500%가 증가했다. LG생건의 빈자리를 메운 중소 사업자들이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다.

이에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신생 혁신기업의 싹을 밟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LG생건의 납품가 차별은 기존유통사와의 유착 및 공생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소비자에게더욱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유통채널의 성장을 막기 위한 대기업들의 견제 행위일 수 있다“고 말했다.

news@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