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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포토에세이]...대중목욕탕

이순곤 기자

입력 2026-10-19 06:54

[신형범의 포토에세이]...대중목욕탕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1월 31일 부산 동래구의 ‘금정탕’이 행정당국에 신고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목욕탕입니다. 같은 해 3곳의 인허가를 시작으로 대중목욕탕 수가 가장 많았던 2003년까지 49년 동안 개업한 목욕탕은 12,604개, 연평균 263개씩 늘었습니다. 사흘에 두 개꼴로 동네 어딘가에 새로운 목욕탕이 생겨난 것입니다.

대한민국 목욕탕의 최전성기는 2003년입니다. 전국에 9900개가 넘는 대중목욕탕이 성업 중이었고 당시 인구(4800만)를 감안하면 4800명 당 목욕탕이 하나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4년부터 개업보다 폐업하는 목욕탕이 많아지면서 매년 목욕탕 숫자가 줄어 2023년에는 6천 곳으로 20년 만에 4천 개가 사라졌습니다.

1980~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목욕탕은 자영업 중에서 규모가 상당히 큰 업종이었고 매출도 높아서 목욕탕 주인은 동네에서 유지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집집마다 샤워부스가 설치되고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공중목욕탕은 급격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사라지는 도시에서 목욕탕 없어지는 게 뭐 대수인가 싶지만 목욕탕은 좀 다릅니다. 흔적을 남깁니다. 엄격하게 분리된 남.녀 공간과 목욕탕에 맞게 설계된 배관과 설비, 단차가 있는 욕조와 굴뚝 등 건물의 특성이 뚜렷합니다. 집기만 빼면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 쉬운 일반 상업공간과 달리 철거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시설을 그대로 살리는 리모델링이 한때 인기였습니다. 1986년 충북 청주에 문을 연 ‘학천탕’은 동네의 랜드마크였지만 2020년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목욕탕 시설을 그대로 살린 카페와 식당으로 리모델링했습니다. 30년 넘게 목욕탕을 이용하던 동네 주민들은 목욕탕의 기억과 향수 때문에, 또 젊은 세대는 이색적인 분위기가 재밌어서 학천탕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동작구의 갤러리를 겸한 카페 ‘부강탕’은 버스 정류장 이름이 ‘부강탕’일 정도로 이 동네에서 유서 깊은 목욕탕이었습니다. 과거 부강탕은 목욕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던 사랑방 같은 장소였는데 대형 욕조 같은 유산을 그대로 보존한 채 ‘갤러리카페’로 변신해 단순히 차를 마시고 예술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회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목욕탕 굴뚝을 북촌에서 찍었습니다. 대중목욕탕은 처음부터 향수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집집마다 욕실이 없던 시대에 목욕탕은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일상의 차이를 잠시 벗어버리고 똑 같이 같은 탕에 몸을 담그는 ‘평등한’ 공간이었습니다. 물장구치다가 어른들께 야단맞고, 삶은 달걀과 바나나우유를 먹던 추억은 이제 드라마에서나 보는 풍경이 됐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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