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고 보면 욕은 좀 이상한 언어입니다. 사전적으로는 공격과 모욕, 비하의 표현인데 현실에서는 꼭 적대감을 담은 용도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내 친구처럼 오히려 친밀함의 표시로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다, 야” 대신 “야이 새끼야”가 먼저 나오고 학교나 군대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라면 가벼운 욕이 관계의 밀도를 나타냅니다. 심지어 ‘욕쟁이 할머니’는 거칠고 투박하고 무식한 이미지가 아니라 따뜻함, 포근함, 인심 같은 정서에 더 가깝습니다. 다른 나라도 욕은 있지만 욕으로 친밀함을 드러내는 경우는 못 본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특유의 관계중심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친소관계의 정도를 섬세한 언어로 조절했습니다. 존댓말과 반말, 호칭과 높임말은 단순한 어법이 아니라 위계와 서열을 나눴습니다. 여기서 욕은 그런 관계를 잠시 해체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욕을 한다는 건 ‘우리는 이 정도 무례를 감당할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암묵적 합의입니다. 그럴 때 욕은 일종의 언어적 ‘스킨십’에 가깝습니다.
재미있는 건 욕의 의미가 단어 자체보다 관계와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말도 친구가 웃으며 하면 인사가 되지만 낯선 사람이 하면 위협이 됩니다. 결국 욕은 의미가 고정된 언어가 아니라 관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욕은 욕 그 자체보다 누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관계에서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다른 나라의 욕이 주로 감탄사나 의미 없이 내뱉는 말이 대부분이라면 우리 욕은 상대의 존재를 깎아내리거나 부정하고 가족을 들먹이며 사회적으로 낙인 찍는 방식이 많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수준을 넘어 존엄 자체를 흔드는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욕은 더 위험합니다. 얼굴과 표정, 관계의 맥락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이에 욕은 ‘우리는 서로 안전하다’는 신뢰를 전제로 주고받는 건데 온라인에서는 그런 안전장치 없이 말만 남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던진 욕이 공격으로 바뀌는가 하면 심각한 혐오 표현이 ‘드립’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소비되곤 합니다.
결론적으로 욕은 한국사회의 관계문화를 보여주는 독특한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욕을 통해 친밀함을 확인하고 거리감을 허물고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쉽게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욕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감정을 옮기는지를 공감하는 일입니다. 성숙한 언어생활은 욕을 안 하는 상태가 아니라 욕이 농담이 되는 순간과 폭력이 되는 순간을 구별하는 ‘언어감수성’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