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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재연 박사의 '트렌드 경영'…AI 시대의 커리어 성장학

입력 2026-06-01 07:40

[비욘드포스트 이봉진 기자] ◆ ‘첫 직장’과 ‘이직’을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
한때 컨설팅 펌(Firm)과 빅테크 기업은 청년들에게 ‘성공의 정답’처럼 여겨졌다. 매년 대규모 채용 시즌이 열렸고, 치열한 스펙 경쟁을 통과하기만 하면 안정적인 커리어가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화이트칼라 고용 시장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채용 규모는 축소됐고, 기업들은 신입 채용에 훨씬 신중해졌다. 졸업장은 더 이상 취업의 보증 수표가 아니다. 그저 출발선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이제는 커리어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재편해야 할 시점이다.

◆ 차가워진 고용 시장, 그리고 AI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채용 시장의 진입 문턱을 낮춘 동시에, 경쟁 강도를 훨씬 높여 놓았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다듬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고, 지원자는 단 몇 시간 만에 수십, 수백 개 기업에 원서를 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이른바 ‘이력서 폭탄’이 쏟아지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채용 담당자는 수천 건의 지원서를 처리해야 하고, 자동화된 스크리닝 시스템조차 과부하 상태에 빠지기 일쑤다.

결국 단순 서류 지원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많은 청년이 “왜 이렇게까지 취업이 어려워졌나”라고 느끼는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개인 역량의 문제라기보다, 고용 시장의 구조 자체가 달라진 결과로 봐야 한다.

◆ 첫 직장은 ‘완성’이 아니라 ‘탐색’이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일수록, 우리는 첫 직장에 대한 환상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많은 사회초년생은 첫 직장이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결정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로 인해 기업의 이름값, 연봉, 직무 적합성 하나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첫 직장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에 가깝다.

첫 직장의 진짜 역할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견디기 어려워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첫 커리어는 완벽한 선택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탐색하는 시간이다.

실제로 노동경제학 연구에서도 청년기의 잦은 직장 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된다. 1970년대 청년들 역시 사회 진입 이후 첫 10년 동안 평균적으로 여러 차례 직장을 옮겼다. 오늘날 흔히 거론되는 ‘잡호핑(Job Hopping)’이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본래 커리어 형성 과정의 본질에 가깝다는 의미다.

따라서 첫 선택이 기대와 달랐다고 해서 지나치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첫 직장을 통해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얻었느냐다.

◆ 이직의 진짜 트리거는 ‘배울 것이 남아 있는가’
커리어 초기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연봉도, 직함도 아니다. 결국 사람을 성장시키는 핵심 동력은 ‘학습 경험’이다.

기업들은 흔히 온보딩 교육, 멘토링,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개인의 역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순간은 대부분 낯선 문제를 직접 마주하고 해결할 때 찾아온다. 새로운 업무를 맡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패 속에서 자기만의 해결 방식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커리어를 단단하게 만든다.

많은 직장인이 이직을 고민하는 결정적 이유 역시 단순한 보상 문제가 아니다. 진짜 트리거(Trigger)는 “이 조직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직감이다. 업무가 지나치게 반복되고, 문제 해결의 난도가 낮아지며, 새로운 책임이나 기회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정체를 느낀다.

물론 모든 권태가 곧 이직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일이 더 이상 자신의 역량을 확장하지 못한다고 판단된다면, 그 순간은 다음 스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 AI 시대일수록, 결국 ‘사람’이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인간적 연결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채용 시장에서는 온라인 지원만으로 두각을 드러내기가 매우 어렵다.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이 수많은 지원자를 일률적으로 걸러내는 구조 속에서, 가장 강력한 차별화 요소는 결국 ‘누가 나를 알고 있는가’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인턴십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다. 단순히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현업의 전문가들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산업이나 회사의 실무자에게 직접 연락해 커피챗이나 짧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타깃형 아웃리치(Outreach)’ 역시 유효한 전략이다. 디지털 과포화 시대일수록, 오히려 이러한 아날로그적 접근이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동시에 개인에게 요구되는 역량의 기준도 변하고 있다. 특정 기술 하나를 오래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는 긴 커리어를 보장받기 어렵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고, 산업 구조 또한 끊임없이 재편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AI 시대의 커리어 경쟁력은 특정 스킬의 단순 보유 여부보다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에서 나온다.

◆ 커리어의 정답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오늘날 노동 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더 다양한 경로를 실험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첫 직장이 평생 직장이 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선택을 완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매 단계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다음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AI 시대에도 결국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사람은 ‘정답’을 쥔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기꺼이 배우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재연 박사. 사진제공=엘앤에이(주)
이재연 박사. 사진제공=엘앤에이(주)
▲ 이재연 박사 프로필 :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bjlee@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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