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평균 200~300명, 주말과 휴일에는 2,000명 이상이 찾는 이 작품은 이제 나주미술관과 송림아트센터의 상징이 되었다. 서울의 대형 미술관에서도 보기 어려운 관람객 수는 이 작품이 가진 독특한 대중성과 소통의 힘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테트라포트를 단순히 바라보지 않는다. 손으로 만지고, 두드려 보고, 기대어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은 놀이기구처럼 다가가고, 어른들은 거대한 구조물 앞에서 웃음을 짓는다. 현대미술이 흔히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과 달리 이 작품은 관객의 몸과 감각을 통해 먼저 다가온다.
원래 테트라포트는 바다를 지키는 방파제다. 거친 파도로부터 해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사람들에게 그것은 무겁고 단단하며 기능적인 시설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금보성은 이 익숙한 산업 구조물을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왔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재료와 색채의 변환이다. 실제 방파제가 지닌 육중함 대신 밝은 색채와 부드러운 이미지가 부여되면서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기억을 수정하게 된다. 바닷가의 무거운 콘크리트가 아니라 광장에 놓인 거대한 조형물, 놀이와 휴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종종 ‘생각의 환전’이라고 말한다. 익숙한 의미를 다른 가치로 교환하는 과정이다. 금보성의 테트라포트 역시 방어와 보호라는 기능적 개념을 소통과 공감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바다를 막기 위해 존재하던 구조물이 이제는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 한글의 철학을 더한다. 테트라포트의 구조는 한글 자음 ‘ㅅ’을 연상시킨다. ‘ㅅ’은 사람 인(人)의 형상과 닮아 있으며, 서로를 향해 손을 맞잡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또한 한글 창제 원리에서 하늘을 향해 열린 형태로 이해할 수 있으며, 공동체와 만남의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한 방파제의 재현이 아니다. 지키는 것에서 함께하는 것으로, 기능에서 의미로, 구조물에서 문화로 변화한 현대미술의 사례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계를 맺는다. 만지고 기대고 웃으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관객들이 보다 쾌적하게 작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강희주 관장이 매주 두 차례 직접 방역과 관리를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더 이상 전시장 벽에 걸린 그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고, 손길과 웃음 속에서 완성된다. 나주미술관의 《테트라포트》는 그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방파제가 파도를 막는 구조물이라면, 금보성의 테트라포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예술이다. 그것은 지키는 예술이자, 연결하는 예술이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새로운 상징이다.
글 : 금보성 (홍익대일반대학원 박사수료, 경영학박사, 현대시 등단, 개인전90회, 한국현대미술가장영향력있는 예술가 선정, 한글회화의 제왕)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