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합의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남겼다.
반도체(DS) 부문의 역대급 호황을 바탕으로 특별경영성과급이 신설되면서, 일부 임직원은 올해 성과급으로만 최대 6억 원대 보상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반년에 걸친 마라톤 교섭은 5월 말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3.7%의 찬성으로 가결되며 최종 타결됐다. 파업이라는 최악의 파국을 면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그들만의 잔치'를 바라보는 중소기업 근로자와 사업주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다. 명절에 선물 세트 하나를 받고도 기뻐하던 이들에게, 6억 원대 성과급 논쟁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깊은 자괴감으로 다가온다.
이번 사안은 한 대기업의 노사 협상을 넘어,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양극화와 중소기업 생태계에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16년 치 연봉'이 한 번에―심화되는 박탈감과 이탈
격차는 이미 통계로 명확히 측정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의 ‘2024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613만 원, 중소기업 근로자는 307만 원이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머무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여기에 성과급 격차가 더해지면, 차이는 단순 배수를 넘어 ‘차원'이 달라진다. 6억 원은 중소기업 근로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6년을 모아야 닿을 수 있는 금액이다. 누군가에게는 16년의 땀방울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 한 번의 보상'으로 지급되는 현실이다.
더 뼈아픈 것은, 이것이 호황 부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 적자가 유력한 비메모리 사업부 임직원조차 최소 1억 6,000만 원의 성과급을 보장받는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4년 넘게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닿는 돈이, 적자 부문에서도 ‘기본값'으로 지급되는 셈이다.
이 압도적 격차의 가시화는 "내가 흘린 땀의 가치가 그토록 다른 것인가”라는 회의로 이어지고, 이는 고스란히 이직 고민과 현업 기피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 인재 쏠림과 중소기업의 ‘기술 공동화'
대기업의 파격적 보상은 고용시장의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청년층의 중소기업 기피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대기업의 천문학적 성과급 규모가 연일 뉴스를 장식할 때마다, 기술력 있는 딥테크 스타트업이나 강소기업조차 우수 인력을 지키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조차 "제가 대학생이라도 어디로 취업하겠느냐”며, "사회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그에 맞는 새로운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인재가 떠난 중소기업은 기술 개발과 혁신의 동력을 잃는다. 그리고 그 공백은 다시 대기업과의 경쟁력 격차를 벌리는 치명적인 악순환을 완성한다. "급여를 올려주고 싶어도 여력이 없는데, 눈높이만 한껏 높아진 직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짙은 토로가 바로 이 ‘기술 공동화'의 입구다.
◆ ‘원팀'의 과실인가, ‘한 팀'의 독점인가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K-반도체의 경쟁력은 대기업 홀로 일군 것이 아니다.
밤낮없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공급하고 물류를 책임진 수많은 협력 중소기업이,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려 달린 결과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번 합의를 두고 "수억 원 성과급 논쟁 속에서 협력 중소기업에는 정당한 대가와 보상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꼬집은 대목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원청 대기업이 초과 이익의 과실을 내부 임직원하고만 나눌 때, 하청 구조 말단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성과 창출에 기여하고도 보상에서는 철저히 소외되는' 구조적 모순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더구나 ‘영업이익 N%' 식의 성과급 요구는 이미 자동차·조선·IT 등 산업 전반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중이다. 원팀이 일군 결실이 한 팀만의 몫으로 굳어질수록, 생태계를 떠받치는 허리는 점점 더 얇아질 수밖에 없다.
◆ 낙수가 멈춘 시대, 필요한 것은 ‘분수'와 제도적 상생
이제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기업 노사가 성과 배분의 비율(%)을 놓고 대립하는 동안, 그 밑바탕을 지탱하는 중소기업 생태계는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 해법은 두 갈래의 인식 전환과 촘촘한 제도 보완에 있다.
첫째, 원청의 상생 책임을 제도화해야 한다. 대기업 초과 이익의 일정 비율을 협력사 공동근로복지기금이나 상생협력기금으로 출연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한층 촘촘해져야 한다.
아울러 성과급 산정의 기준이 되는 성과공유제 모델을 협력사까지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현장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의 독자적 보상 체계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핵심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내일채움공제 같은 자산 형성 지원 제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한때 중소기업 청년들의 유일한 목돈 마련 통로였던 청년형 제도가 대부분 축소·종료된 지금, 제도의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성과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역시 과감히 늘려야 한다.
◆ 결국, 공정은 담장 너머에서 완성된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란은 우리 사회에 "진정 공정한 보상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겁고도 본질적인 과제를 남겼다.
한 회사 담장 안의 공정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 전체의 공정과 상생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든든한 허리인 중소기업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보상이 한 기업의 ‘세계관'이라면, 분배는 한 산업의 ‘체질'을 결정짓는다.
낙수가 멈춘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그려야 할 것은, 개인의 임금 명세서 한 장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분배 지도다. ‘원팀 대한민국'의 진정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은 바로 그 지도를 고쳐 그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bjlee@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