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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재연 박사의 '트렌드 경영'…팀을 무너뜨리는 건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입력 2026-05-18 08:10

- 갈등 없는 회의실은 평화가 아니라 침묵이다
-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만든 구조다"

[비욘드포스트 이봉진 기자] 팀을 무너뜨리는 건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쁜 구조가 좋은 사람을 나쁘게 만들 뿐이다. 2026년 한국 직장의 풍경은 묘하다.

최근 취업 포털의 직장인 퇴사 사유 조사에 따르면, 1위는 연봉이나 성장 정체가 아닌 '조직 문화와 사람 관계'로 나타났다.

회사를 다니되 정해진 일 이상은 하지 않는 소극적 이탈을 뜻하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은 이제 Z세대만의 구호를 넘어 40대 중간관리자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게다가 AI 도입 이후 업무 메신저와 자동 요약본 등 텍스트의 양은 늘었지만, 정작 구성원 간 솔직한 대화의 총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조직이 망가지는 원인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문제 있는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다르다. 대부분의 팀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서서히 무너진다. 이것이 조직 내 '독성 관계(Toxic Relationship)'의 본모습이다.

◆ 왜 조용한 팀이 먼저 무너지는가?…평화가 아니라 '침묵'이다
겉으로 보기에 무척 건강해 보이는 팀이 있다. 회의는 빠르게 끝나고, 공개적인 충돌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평화로운 회의실에서 중요한 질문들조차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 방향이 정말 맞습니까?",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까?"와 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는 조직은 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침묵에 익숙해진 상태일 뿐이다.

구글이 180개 팀을 분석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Project Aristotle)'의 결론은 분명했다. 팀의 성과를 가른 핵심은 '어떤 인재가 있느냐'가 아니라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었다.

즉, '이 말을 꺼냈을 때 바보 취급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오로지 침묵으로 유지되는 얕은 평화는 이러한 감각을 매일 조금씩 깎아낸다.

그리고 방치된 채 쌓인 미해결 문제들은 반드시 더 큰 비용과 위기로 조직에 돌아온다.

◆ 우리는 무엇을 경쟁하고 있는가?…성과가 아닌 '어떻게 보일 것인가'
두 번째 풍경은 보이지 않는 '점수 게임'이다. 조직 내에서 누가 더 기여했는지, 누가 더 인정받는지를 두고 경쟁이 시작되면 협업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구성원들은 실제 달성해야 할 성과보다 상사나 동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한다. 회의에서의 발언 횟수, 메신저의 반응 속도, 심지어 상사 앞에서의 표정까지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 된다.

이 순간부터 팀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배가 아니라, 각자의 생존을 입증해야 하는 살벌한 무대로 전락한다.

이러한 점수 게임을 부추기는 것은 종종 '배려'의 언어로 교묘하게 포장된 통제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문장은 익숙하게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구성원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책임을 위로 집중시키는 낡은 구조가 숨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눈치를 살피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도전하기보다 안전한 회피를 택한다. 그 결과 조직의 실행력은 느려지고, 혁신과 창의성은 흔적 없이 증발해 버린다.

◆ 그렇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독성 관계의 공통점은 결코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과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며, 솔직한 의견 제시가 불이익으로 돌아온 경험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영리하게 학습한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말이다.

따라서 해법 역시 개인의 태도를 고치려 드는 지엽적인 접근에 머물러선 안 된다. 진정으로 바꿔야 할 것은 구조다. 회의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역할(Devil's Advocate)을 상시화하고, 모든 의사결정의 근거는 투명하게 기록해 공유해야 한다.

피드백은 모호한 성격 지적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구체적 행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팀을 위한 협업 기여도 역시 핵심 평가 지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리더의 진짜 역할은,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공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건강한 조직은 갈등이 없는 무균실이 아니다.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곳이다. 겉으로 드러난 매끄러운 평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달려 있다.

좋은 인재들이 모였음에도 팀이 무너지고 있다면,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누가 문제인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이 훌륭한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로 말이다.
이재연 박사. 사진제공=엘앤에이(주)
이재연 박사. 사진제공=엘앤에이(주)
▲이재연 박사 프로필 :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bjlee@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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