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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국가화원에서 피어난 꽃,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

김민혁 기자

입력 2026-06-22 16:24

류메이즈(Liu Meizi) 개인전 《피안에서 꽃이 피다(彼岸花开)》를 바라보며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2026년 6월, 중국 베이징의 중국국가화원 미술관에서 개최된 류메이즈(Liu Meizi)의 개인전 《피안에서 꽃이 피다》는 단순한 화조(花鳥)의 재현을 넘어선 자리였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치열한 질문이자, 인간의 성장과 시간, 그리고 생명의 순환을 시각화한 거대한 회화적 서사였다.

중국 최고 권위의 국가급 미술 창작·연구기관인 중국국가화원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것은 예술적 성취와 학술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중국 근현대미술의 거장들이 거쳐 간 이 상징적인 공간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 류메이즈는 자신이 중국 현대회화의 중심축에 서 있음을 당당히 증명해 보였다.

중국 저장성 원저우 출신이자 상하이영화예술대학교 교수, 예술학 박사인 류메이즈는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동서양의 시각문화를 매개하는 대표적인 국제 작가다. 이미 중국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음은 물론 러시아, 프랑스, 한국 등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역량을 선보여 왔다.

그러나 류메이즈를 단순히 ‘꽃을 그리는 화가’로 박제하는 것은 그의 방대한 예술 세계를 축소 왜곡하는 일이다. 그의 작가노트는 이 점을 명확히 짚어낸다.

“꽃은 작품의 진정한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회화로 들어가는 하나의 입구일 뿐이다.”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이 말은 그가 구축한 미학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그에게 꽃은 묘사의 대상이 아닌 ‘시간의 궤적’이다. 화면 가득 층층이 쌓인 꽃들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고독과 성장의 기록이다. 작가는 집요하게 반복되는 붓질과 겹쳐지는 색채를 통해 인간 존재가 시간성 속에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추상화한다.

이러한 태도는 전통적인 동양의 화조화나 서구의 정물화와 궤를 달리한다. 상징 체계에 갇힌 화조화(매화의 절개, 난초의 고결함 등)나 사실적 재현과 공간 구도에 집중하는 서구 정물화와 달리, 류메이즈의 꽃은 상징도 재현도 아니다.

그의 화면에는 시선을 붙잡아두는 단 하나의 ‘중심’이 없다. 꽃들은 사방으로 얽히고설키며 끝없이 증식한다. 관람자는 객관적 관찰자가 아니라, 프레임을 넘어 확장되는 하나의 생명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미술사적으로 이는 후기 인상주의의 색채 탐구, 추상표현주의의 육체적 제스처, 동양 회화의 기(氣) 개념, 그리고 현대 설치미술의 공간성이 절묘하게 융합된 독창적인 결과물이다.

특히 이 ‘중심 없는 구성’은 스마트폰과 디지털 이미지 레이어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새로운 시각 경험과 긴밀히 연결된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거대한 꽃의 클로즈업은 자연의 풍경이라기보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의 파동이자 시간의 흐름 그 자체다. 중국 미술평론가 왕단팅 역시 그가 전통 화조화의 틀을 깨고 독창적인 시각 체계를 구축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한국과 중국을 오간 오랜 유학 및 활동 역정은 그의 회화에 깊은 철학적 점경을 더했다. 이국의 환경에서 겪은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기(氣)’, ‘여백’, ‘자연의 질서’라는 동양 사상의 본질을 깊이 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이 화려한 색채 속에서도 시끄럽지 않고 묘한 침묵과 명상적인 고독을 품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화면에 투사한 생명은 환희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실과 기다림, 시련을 모두 포괄하는 존재의 전 과정이다. 전시명 《피안에서 꽃이 피다》가 은유하듯, 이는 비바람을 견디고 마침내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내는 인간 정신의 숭고한 여정이다.

개념과 담론 과잉으로 지쳐가는 현대미술계에서 류메이즈의 회화는 붓질과 색채, 리듬이라는 회화 본연의 언어가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가장 강력한 매체임을 웅변한다. 그는 꽃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다. 시간과 생명, 인간 존재의 성장을 꽃이라는 메타포로 받아 적는 ‘동시대 회화의 시인’이다. 이번 전시는 그 시학(詩學)이 가장 찬란하게 만개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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