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위원회
ad
ad

logo

ad
ad
ad
ad

HOME  >  사회

[기획 연재] 이재연 박사의 '트렌드 경영'…정년 연장 시대, 중장년 '리스킬링'이라는 과제

입력 2026-06-29 10:12

경험은 그대로, 도구만 새롭게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 사진제공=엘앤에이(주)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 사진제공=엘앤에이(주)
[비욘드포스트 이봉진 기자] 스물다섯 해를 한 소재 가공 공장에서 보낸 생산 베테랑이 있다. 생산 라인의 미세한 소리만 듣고도 어디서 문제가 발생할지 짚어내는 장인이다. 그런 그가 회사가 새로 도입한 인공지능(AI) 기반 공정 데이터 분석 화면 앞에서는 마우스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더 안타까운 장면은 그다음이다. “정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굳이…”라며 회사는 그를 신기술 교육 명단에서 슬그머니 뺀다. 25년의 경험과 노하우가 최신 도구와 만날 기회는 그렇게 사라지고 만다. 이는 지금 수많은 기업에서 매일 같이 반복되는 풍경이다. 그리고 이 장면 안에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정년 연장' 논의의 핵심이 담겨 있다.

◆ 늘려야 할 것은 정년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생산가능인구는 급감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과제가 됐다. 하지만 단순히 정년을 늘리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늘어난 기간 동안 중장년 근로자가 계속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곧 ‘리스킬링(Reskilling·기존 인력을 새로운 직무 역량으로 다시 길러내는 일)’이다.

산업 현장은 AI와 디지털 전환(DX)으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한 번 익힌 기술로 평생을 버티던 시대는 지났다. 특히 50~60대는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도, 정작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기회 자체를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선 사례의 베테랑처럼 말이다.


◆ 보호의 대상인가, 성장의 동력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중장년을 바라보는 사회와 기업의 시선이다. 정년 연장을 단순한 복지나 고용 유지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부담’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해답도 달라진다. 중장년을 성장의 동력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재교육한다면,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 위에 최신 역량이 더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얻고, 근로자는 더 길고 안정적인 직업 생애를 설계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스킬스퓨처(SkillsFuture)’ 이니셔티브를 통해 전 국민의 평생학습을 지원하고 있으며, 독일은 산업 구조 변화에 발맞춰 재직자 직업훈련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있다.

일본 역시 초고령화에 대응해 중장년층을 위한 디지털 교육과 재취업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는 추세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노동시장을 ‘연령’이 아니라 철저히 ‘역량’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 경험은 그대로, 도구만 새롭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핵심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중장년 교육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배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학습자는 낯선 기술 앞에서 위축되고, 회사는 투자 대비 효과(ROI)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향은 그 정반대다. 수십 년간 쌓아온 직무 경험은 그대로 두되, 그 위에 ‘AI’라는 새로운 도구만 쥐여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예컨대 생산 관리자에게 처음부터 복잡한 코딩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가 평생 눈으로 읽어온 라인의 데이터를 AI로 쉽고 빠르게 분석하는 법을 더해주면 된다. 영업 담당자에게는 기존 고객 관리 노하우에 AI를 접목하는 법을, 경영 관리 담당자에게는 문서 작성과 업무 자동화에 AI 툴을 활용하는 법을 얹어주는 식이다. 이는 오래된 칼을 내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날카롭게 벼려 더 잘 들게 하는 작업과 같다.

이 같은 원칙을 세우면 현실적인 과제도 또렷해진다. 첫째, ‘중장년 맞춤형 실무 디지털 교육’이 필요하다. 단순한 컴퓨터 기초 활용을 넘어, 생성형 AI, 데이터 분석, 디지털 협업 도구 등 당장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실무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돼야 한다.

둘째, ‘산업별 맞춤형 전환 교육’이다. 제조업, 서비스업, 금융업 등 각 산업마다 기술 변화의 방향이 다른 만큼, 리스킬링 과정도 그 결을 섬세하게 따라가야 한다.

셋째, ‘기업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제도적 뒷받침’이다. 현실적으로 재직자 교육은 기업 입장에서 단기적인 ‘비용’으로 인식돼 삭감 1순위가 되기 쉽다. 이러한 비용 편익 계산을 바꿔줄 과감한 세제 혜택 인센티브와 교육비 지원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기업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 "몇 살까지"가 아니라 "어떻게"
결론적으로 정년 연장은 단순히 법적인 노동 기간을 몇 년 늘리는 1차원적 정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인의 삶의 질과 국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아우르는 중대한 사회적 과제다.

이 과제의 성패는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중장년 세대에게 다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열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바꿀 때다. “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오래, 더 가치 있게 일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정년 연장과 리스킬링은 결코 별개의 정책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의 묶음(패키지)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중장년에 대한 교육 투자는 매몰되는 복지 비용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미래 성장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본격적인 정년 연장 시대, 개인과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물리적인 나이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배우는 힘’에서 나온다.

bjlee@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