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오주입 사고 원천 차단…공공 실증 거쳐 민간 확산
시, '사람이 실수해도 사고 나지 않는 시스템' 확대 구축

시는 4일 지난해 인천환경공단 13개 사업장, 103개 화학물질 취급시설에 적용한 '화학사고 안전신호등' 사업을 올해부터 민간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공공 현장에서 검증한 경험을 토대로 업종별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새로운 모델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화학물질마다 고유 색상을 지정해 저장탱크와 배관, 밸브, 주입구까지 동일한 색으로 표시하고 서로 다른 화학물질은 물리적으로 연결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전용 연결장치를 적용하는 예방 시스템이다. 작업자가 순간적으로 착각하더라도 오인·오주입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정책은 지난해 인천에서 연이어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인천환경공단 공촌사업소에서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을 황산알루미늄 저장탱크에 잘못 주입하는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어 9월 미추홀구의 한 반도체 제조공장에서는 염소산나트륨을 염산 저장탱크에 잘못 주입하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해 무려 25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두 사고 모두 작업자가 순간적으로 화학물질이나 주입구를 혼동한 것이 원인이었지만, 인천시는 이를 단순한 개인 부주의로만 볼 수 없다고 추정했다. 아무리 숙련된 작업자라도 복잡한 화학물질 취급 환경에서는 순간적인 착오가 발생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그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시는 작업자의 주의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시각적 식별과 물리적 차단장치를 통해 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최근 12년 화학사고 49건…사고 94%는 시설·관리 문제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인천에서 발생한 화학사고는 모두 49건이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숨지고 92명이 다쳤다.
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시설 결함이 23건, 안전기준 미준수가 23건으로 전체 사고의 93.9%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모두 8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치는 등 최근 12년 가운데 가장 큰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화학사고는 단순 누출에 그치지 않는다. 서로 반응하는 화학물질이 혼합되면 유독가스가 발생하거나 폭발과 화재로 이어질 수 있으며, 누출 규모와 기상 조건에 따라서는 사업장을 넘어 시민 생활권까지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상당수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표시체계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저장탱크에는 물질명이 적혀 있지만 배관에는 유체 흐름만 표시돼 있거나, 밸브에는 관리번호만 부착돼 별도의 도면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입구 역시 오래된 라벨만 남아 있거나 표시가 없는 사례가 많아 작업자가 순간적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같은 약품은 같은 색…'이중 안전장치' 구축
시가 도입한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됐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초록색, 황산알루미늄은 파란색, 수산화나트륨은 노란색 등 화학물질마다 고유 색상을 부여한다.
이 색상은 저장탱크는 물론 배관과 밸브, 주입구까지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업자는 화학물질의 이동 전 과정을 색상만으로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전용 연결장치까지 더해진다. 화학물질마다 연결구의 직경과 나사산, 핀 구조 등을 다르게 제작해 서로 다른 물질은 아예 연결 자체가 되지 않도록 설계한다. 설령 작업자가 색상을 잘못 확인하거나 물질명을 착각하더라도 연결 단계에서 한 번 더 사고를 막는 '이중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셈이다.
이는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정책이 아니다.현행 법령에 따른 경고표지와 안전교육, 시설검사, 비상대응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각적 식별과 물리적 차단장치를 추가해 안전성을 높이는 보완 시스템이다. 기존의 '주의 중심 안전관리'를 '실수 예방 중심 안전관리'로 한 단계 발전시키는 개념이다.

시는 지난해 공촌사업소 사고 직후 화학사고 대책회의를 열고 인천환경공단 13개 사업장의 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전수 조사했다. 이후 차아염소산나트륨과 황산알루미늄, 수산화나트륨 등 15종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103개 시설의 개선을 완료했다.
시설마다 화학물질명과 전용 색상을 표시하고 주입구에는 명패와 시건장치를 설치했다. 탱크 주변에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보관함을 비치했으며, 약품 주입 중임을 주변 작업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회전경고등도 함께 설치했다.
공공시설에서 효과를 확인한 인천시는 올해부터 민간사업장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지난달에는 관내 사업장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교육을 실시했으며,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에는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전문가는 사업장의 저장·이송 공정을 분석하고 오주입 위험구간을 진단한 뒤 색상표시와 전용 연결장치 적용 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시는 올해 민간사업장의 자율 참여를 확대하고 2026년부터 2027년까지 축적되는 현장 사례를 분석해 업종별 적용기준과 유지관리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화학물질 시각적 식별체계와 전용 연결장치 등이 국가 안전관리 정책과 법령에 반영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도 제도 개선을 건의할 방침이다.
◇"사고 후 대응보다 사고 이전 예방…안전관리 패러다임 바꾼다"
시는 이번 사업이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 체계를 바꾸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를 현장 개선으로 연결하고 공공시설에서 먼저 실증한 뒤 민간으로 확산해 국가 제도로 발전시키는 '상향식 안전관리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윤은주 시 환경안전과장은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작업자에게 더 조심하라고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순간적으로 착각하더라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작업환경과 안전관리체계를 함께 개선하는 정책"이라며 "공공시설에서 시작한 현장 실증을 민간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인천의 경험이 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새로운 표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마련과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은 '사람의 실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실수가 인명피해와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한 안전캠페인을 넘어 현장의 작업환경 자체를 바꾸는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송인호 기자 sih31@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