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신격호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춘호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춘호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춘호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하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하여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했다.
신춘호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당시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성공장 설립때에도 신춘호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춘호회장은 국물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신춘호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높다. 유기그릇으로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신춘호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되어 있다. 신춘호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되어있었고, 한자를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춘호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석권하는 국민라면으로 등극했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신춘호회장은 해외진출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고급의 이미지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을대표하는 제품인데, 나라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품질에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로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시설에 라면최초로 입점되어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춘호회장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그리고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전해진다.
신춘호회장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맛을 라면과 스낵으로 만들어냈다. 신춘호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국민들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신춘호회장의농심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로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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