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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늙다리 달리미들은 다 어디 갔을까

입력 2025-11-13 06:41

[신형범의 千글자]...늙다리 달리미들은 다 어디 갔을까
취미로 마라톤(정확히는 달리기)을 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직장 다닐 땐 동호회에 가입해 대회에도 자주 참가했습니다. 내가 아는 동호회 중에는 몇십 년 경력의 50~60대도 많았고 칠순을 넘긴 러너들도 흔했습니다. 주말마다 열리는 대회 신청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부담 없는 금액(3~5만원)에 참가만 하면 기록측정용 칩과 함께 티셔츠와 완주메달, 물과 갖가지 간식이 제공됐습니다. 후원사가 괜찮은 대기업일 경우 기대 이상의 기념품을 챙기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 이후 마라톤대회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달리는 것 자체가 좋아서 뛰는 게 아니라 ‘폼나는 러닝’이 유행하면서 유명한 대회 참가엔 ‘광클’이 필수가 됐습니다. 누구나 달리던 마라톤은 이제 고가 장비를 마련하고, 러닝크루를 만들고, 전문가를 초빙해 레슨을 받아야 하는 ‘럭셔리 레저’가 돼버렸습니다.

요즘 주요 대회는 젊은이들로 가득합니다. 42.195km를 천천히 각자의 페이스로 즐기던 노익장들은 메이저 대회에서 발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참가 신청이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하듯 광클이 필요하고 굿즈패키지 구매 등 대회 참가방식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노인들을 보기 어려워진 곳이 또 있습니다. 야구장입니다. 1200만 관중 시대를 맞은 야구정에서도 올드팬은 별로 볼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관람티켓을 구매하는 건 추억 속 전설이 됐습니다. 야구티켓을 예매하는 과정을 보면 로그인, 팝업창 해제, 결제수단 등록 그리고 티케팅 페이지가 열리는 순간 ‘예매’를 클릭합니다. 대기인원 OOO명, 이때 ‘새로고침’은 안 됩니다. ‘새로고침’하면 대기인원이 ‘몇만 명’으로 늘어나는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좌석선택’까지 와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몇 번 대하다 보면 매진입니다. ‘피가 튈 만큼 치열한 티케팅’이라는 의미로 ‘피케팅’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한국시리즈를 보기 위해 야구팬들은 ‘피케팅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LG와 한화의 잠실 1차전은 예매창이 열린 지 1분만에 매진됐고 2차전 역시 접속자가 폭주해 팬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예매에 성공한 구매후기는 무용담에 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억울한 이들은 바로 몇십 년 동안 원할 때 아무 때나 가서 티켓을 사 들어가던 노인 야구팬들입니다.

나이가 약점이 된 시대입니다. 한때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영포티’는 지금은 젊어 보이려고 안간힘 쓰는 40대를 조롱하는 멸칭으로 바뀌었습니다. 타고난 것, 자기 노력과 상관 없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조건이 강점 또는 약점이 되는 건 비겁하고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나이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피부색, 외모, 특별한 재능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남의 시선에 유독 민감한 ‘비교지옥사회’ 한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특권이 되거나 약점이 되는 정도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려면 남의 시선에 특정되고 그 평가에 전전긍긍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늙는 게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노년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합니다. 따뜻하게 배려하지만 약간은 냉소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 잘못된 편견들과 싸우는 늙은이가 될 계획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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