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문학의 쓸모](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1080807060024646a9e4dd7f220867377.jpg&nmt=30)
심리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다른 학문들도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 할 수 있는 보편성을 포괄하고 추출해서 정리해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 줍니다. 인간에 대한 입체적 이해 혹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까지 파헤쳐 보여주곤 합니다. 그러니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의 마음이 꿈틀거리는 것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그 관찰의 메인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들, 질투 선망 욕정 열등감 증오 살의 같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털어놓기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들을 재료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증폭, 변형하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창조해냅니다.
인간의 행위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문학 외에 신문기사도 있습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은 결국 인간 내면의 작용이 겉으로 표출된 것인데 기자들은 주로 겉으로 드러난 행위와 그 결과에 집중합니다. 다시 말해 육하원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대신 내면적 동기 돈 욕정 복수 등으로 간단하게 유형화합니다. 사람들은 사건을 쉽게 이해하길 원하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사람인지, 누구에게 분노하면 되는지 결론부터 알려주기를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선명한 정의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제 인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는 동기도, 인과관계도, 선악 구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신문기사처럼 몇 문장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냉철한 팩트의 집합으로 보이는 신문기사보다 주관적인 내면의 고백 덩어리로 보이는 문학이 실제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더 잘 설명해줄 때가 있습니다. 최소한 작가는 자기자신이라는 한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 세계를 관찰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옴진리교 사린가스 살포 사건에 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큐멘터리를 쓰면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인 옴진리교 신자들도 인터뷰했습니다. 의외로 신자 중에는 명문대 출신 연구원 등 이공계 출신이 많았습니다. 검증된 원칙과 데이터의 세계에서 살던 이들이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효코처럼 통상적인 사고의 범주를 벗어난 예외적이고 극단적 상상력의 인간을 만났을 때 오히려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해진 상식에만 갇혀 있는 인간은 비상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첨단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여전히 더 많은 문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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