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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기억을 믿을 수 있나?

입력 2025-05-30 08:00

[신형범의 千글자]...기억을 믿을 수 있나?
인간의 기억을 다룬 고전 영화가 있습니다. 일본영화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은 아내와 길을 가던 사무라이가 산적을 만났는데 산적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고 사무라이는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법정에 잡혀온 산적과 강간당한 아내, 그리고 무당의 입을 통해 증언하는 죽은 사무라이 이 세 사람의 기억은 약간씩 다릅니다.

산적은 사무라이의 아내를 탐했지만 그녀 역시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그후 여인이 남편을 죽여달라고 해서 자신은 정정당당하게 겨뤄 사무라이를 죽였는데 결투 후에 보니 여인은 이미 달아났다고 말합니다. 여자는 강간당한 후 남편이 자기를 보는 눈에 경멸이 가득 찼고 자신은 치욕과 분노로 어쩔 수 없이 남편을 칼로 찔러 죽였다고 자백합니다.

빙의한 무당을 통해 죽은 사무라이는 아내가 산적에게 겁탈당한 후 산적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간에 살인까지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산적은 그냥 가버렸고 아내 역시 사라져 자신은 아내를 지키지 못한 수치심에 자결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벌어진 사건은 하나인데 영화는 누구의 기억이 진실인지 쉽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기억한다는 착각》은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 및 신경과학 차란 란가나스 교수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뇌의 구조와 원리를 25년 동안 연구한 것을 정리한 책입니다.

란가나스에 따르면 기억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에 가깝습니다. 그림에는 완전한 사실이라기보다 화가의 시각이 반영된 해석과 추측이 어느정도 섞여 있습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이미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감정을 덧붙인 형태로 저장합니다. 똑 같은 일을 겪었어도 사람에 따라 기억이 다른 건 이 때문입니다.

기억은 한번 새겨지면 영원히 그대로 보존되는 석판 같은 것도 아닙니다. 새겨진 것 위에 수정이 가해지고 그 위에 계속 덧쓰인 양피지와 같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기억의 인출, 즉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 자체가 그 기억을 변형시키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점에 품은 의도와 감정이 소환한 기억에 변형을 가해서 약간 다른 형태로 재저장하는 것입니다. 기억을 자주 불러낼수록 그 기억을 품은 세포 연합이 강화돼 더 잘 기억하게 되겠지만 동시에 꺼낼 때마다 왜곡되고 보정돼 원본과 달라질 위험도 커집니다.

또 기억은 과거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현재 그리고 미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기억은 한번 습득한 정보를 잘 간직했다가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에 더 빠르게 환경을 파악하고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무료할 때 옛추억에 잠기라고 주어진 기능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자의 주장을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궁금증 하나는 해소했습니다. 나는 전자책과 종이책 중에 종이로 읽은 것을 더 잘 기억한다고 느끼지만 이유는 몰랐습니다. 책에 따르면 기억 인출에 결정적인 요소는 맥락, 즉 어떤 기억이 형성될 때의 장소와 분위기에 대한 감정입니다. 종이책은 책장을 넘길 때 느끼는 무게감, 촉감, 색깔과 냄새 등 감각적 요소들을 전자책보다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컨텐츠까지 더 잘 기억하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게 분명합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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