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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물고기와 스토리텔링

입력 2025-06-19 08:18

[신형범의 千글자]...물고기와 스토리텔링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명태는 우리나라에서 흔하디 흔한 생선 중 하나였습니다. 동해 깊은바다에 살다가 겨울이면 함경도 강원도로 오던 찬바다 물고기입니다. 그러다 동해 해수온도가 상승하면서 1980년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000년대 초반부터는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먹는 명태는 대부분 원양에서 잡은 것입니다.

명태는 대구과에 속하는 원래 이름 없는 물고기였는데 함경북도 명천에 사는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처음 잡았다고 해서 ‘명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값싸고 흔해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생선인 만큼 명태와 관련된 이름은 무려 4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잡은 명태를 얼린 건 동태, 바로 잡은 생태, 말린 건 북어, 반건조한 코다리, 덕장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 놈은 황태라 부릅니다. 새끼 명태는 노가리, 황태를 만들다 검게 된 흑태나 먹태, 말라서 딱딱해진 깡태, 그 밖에도 애태, 왜태, 앵치 등 다양한 이름이 있는데 잡는 방법에 따라 그물로 잡은 망태, 낚시로 잡은 조태도 있고 산란 후에 잡힌 꺽태, 잡은 시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도루묵 얘기도 흥미롭습니다. 일본군을 피해 피난가던 선조가 함경도 지방에 이르렀을 때 어부가 진상한 ‘묵’이라는 생선을 너무 맛있게 먹어 이름을 ‘은어’라고 붙였답니다. 임진왜란 후 궁에 돌아와 은어를 다시 먹어보니 그때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고 했다고 해서 묵의 이름은 ‘도루묵’이 됐다는 겁니다.

조기를 해풍에 말린 굴비는 고려 인종 때 전라도 영광 법성포로 유배 간 이자겸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조기를 너무 맛있게 먹고 난 후 이자겸은 결코 ‘비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屈非)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굳어진 이름이 ‘굴비’입니다.

그럴듯하지만 명태도, 도루묵도, 굴비도 모두 근거가 희박한 얘기들입니다. 그래도 이런 스토리텔링은 재미있습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 얘기, 몸뚱이 반이나 되는 큰 입과 흐물흐물한 살 때문에 잡히는 족족 그물에서 떼어내 물에 던지다 보니 ‘텀벙’ 소리 때문에 ‘물텀벙이’로 불리던 아귀 얘기도 생선 맛을 정겹게 해 줍니다.

물고기가 변한 건 아닐 텐데 기후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이 달라지면서 어떤 물고기는 귀해져 몸값이 오르고 그냥 버려지던 물고기가 밥상에 오르고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된 물고기도 있으니 물고기도 사람일도 참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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