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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너도 VIP냐? 나도 VIP다

입력 2025-06-27 08:38

[신형범의 千글자]...너도 VIP냐? 나도 VIP다
공연장의 좌석등급은 보통 VIP, R(Royal), S(Superior), A, B, C로 나뉩니다. 그런데 요즘은 B석, C석이 없는 공연장이 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티켓을 구입한 B석, C석 관객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공연장의 배려라고 좋게 해석합니다. 대신 상위 좌석등급을 조정해 B석, C석 자리는 모두 A석으로 둔갑했습니다.

좀 지난 얘긴데 아내와 함께 잠실에 있는 콘서트홀에서 조수미 공연을 본 적 있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전문 공연장이라 시설은 매우 훌륭합니다. VIP석이었는데 2층 2열 구석 자리였습니다. 소리는 괜찮았지만 성악가의 얼굴과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VIP석인데 공연 내내 착잡한 기분이었습니다.

그게 ‘전 객석의 VIP화’의 산물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이런 현상은 공연업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은 1층이 전부 최고 등급 좌석입니다. 전체 객석의 절반이 넘습니다. 최근 인기 공연을 많이 한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역시 VIP석 비율이 전체의 절반(48%)에 이릅니다. 내가 갔던 극장과 같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샤롯데씨어터도 VIP석이 45%나 되고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은 아예 객석 대부분(56%)이 VIP석입니다.

이런 ‘VIP 마케팅’은 백화점, 카드업계에선 이미 일반화된 개념입니다. 그러면서 VIP가 마구 늘어나는데도 백화점들은 VIP의 기준을 높이지 않고 같은 VIP라도 5~7등급으로 세분화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카드사들도 VIP고객을 구분하긴 하지만 최고 등급의 VIP가 아니면 일반회원과 혜택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같은 ‘VIP 인플레이션’ 현상은 패션계, 연예계 등 소위 ‘허세’가 먹히는 업계에서 특히 심한데 이런 곳에서 VIP는 사실상 ‘일반고객’과 동의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VIP를 넘어선 VVIP, 심지어 VVVIP까지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을 과도하게 VIP를 남발하는 기업들의 꼼수라고 탓할 일만도 아닙니다.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의 자존심, 우월감, 욕망 등을 겨냥해서 상품과 서비스를 설계합니다. 반면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은 욕망과 남과는 다른 신분의 VIP가 되고 싶은 소비자의 허영심도 ‘VIP인플레이션’의 공범으로 봐야 합니다.

소비자가 기업의 전략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뜻 그대로 ‘VIP’를 ‘정상화’시키려면 소비자는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소비하기 전에 ‘나는 VIP혜택을 누리고 싶어서인가 단순한 우월감인가, 진짜 실질적인 혜택인가 단순한 마케팅 언어인가’ 등을 따져보는 게 좋겠지만 기업들이 선택의 폭을 자기들 입맛대로 제한해 버리면 소비자는 그 틀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적인 한계이긴 합니다. 애고, 결론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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