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어느 순간 카톡 메시지를 읽지 않거나 읽어도 답이 없는 잠수이별은 정말 황당합니다. 소셜미디어 계정은 어느새 삭제돼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확실하게 끝난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상대의 최근 태도나 메시지를 확인해 보지만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책감이 생기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는 희망고문에 시달리면서 고통은 오래 지속됩니다.
영어에도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고스팅(ghosting)’이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우리만 그런 건 아닌가 봅니다. 고스팅은 단순히 소통의 단절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가치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심리적 폭력과도 같습니다. 심하게는 아무 설명도 없이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상징적 자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스팅은 상대를 존중해야 할 인격체가 아닌, 언제든 불러오거나 삭제할 수 있는 데이터쯤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기분, 기다림, 불안 같은 건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타인을 나와 동등한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공감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합니다.
고스팅이 만연한 사회는 언제든 나도 버려질 수 있다는 만성적 불안이 자리잡습니다.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의 문턱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깊은 관계를 맺는 걸 꺼려합니다. 연결과 관계맺음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인데 고스팅은 그 신뢰의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어 결국 정서적 고립을 가져오게 합니다.
건강한 관계라면 만남만큼이나 헤어지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오해와 사과, 용서와 이해는 대화를 통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각자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서적 통과의례입니다. 고스팅은 이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상대를 영원한 미결정 상태의 지옥에 가두는 잔인한 행동입니다.
예전엔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선 마음이 변했다는 사실을 직접 알릴 최소한의 용기라도 필요했지만 지금은 문자, e메일, DM, 소셜미디어 등 갖가지 연결 수단에서 그냥 사라지면 끝입니다. 자동차가 발명되고 나서 교통사고가 생겨났듯이 디지털 미디어가 일상을 지배하면서 미디어를 이용하지 않는 행위가 무례한 태도이자 잔인한 폭력의 의미가 돼버렸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sglee640@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