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위원회

logo

ad
ad
ad

HOME  >  사회

[기획 연재] 이재연 박사의 '트렌드 경영'…두려워서 움직이는가, 믿어서 움직이는가

입력 2026-10-05 11:46

신뢰는 결코 직급과 권한으로 얻을 수 없다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사진제공=엘앤에이(주)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사진제공=엘앤에이(주)
[비욘드포스트 이봉진 기자] 경영자에게 꼭 한번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직원들이 당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사를 믿느냐는 질문이 아니다. 경영자인 '당신'을 믿느냐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출근과 동시에 매출, 이익, 생산성, 시장 점유율 등 눈에 보이는 데이터를 확인한다. 그러나 정작 조직을 실제로 움직이는 핵심 무형 자산인 '신뢰(Trust)'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신뢰는 숫자나 지표로 깔끔하게 측정할 수 없지만, 이것이 결핍된 조직은 곳곳에서 뚜렷한 이상 신호를 보낸다. 회의실에서 말이 줄어들고, 문제가 생겨도 즉각적인 보고가 올라오지 않는다.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시도를 꺼리며, 최선의 결정을 위한 보고서보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보고서만 쌓여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직원들은 회사에서 '주어진' 최소한의 일만 하기 시작한다.

◆ 말과 행동의 엇박자, 리더를 향한 잣대가 되다

"우리 회사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소통하는 조직을 만들겠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경영자라면 한 번쯤 해본 말일 것이다. 문제는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에 발생한다.

사람이 중요하다면서 위기 때 가장 먼저 삭감하는 예산이 교육비이고, 소통을 강조하면서 회의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 독차지하며, 실패해도 괜찮다고 해놓고 정작 실패한 팀장을 다음 인사에서 조용히 좌천시킨다면 직원들은 경영자를 어떻게 기억할까.

직원들은 경영자의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리더를 읽어낸다.

특히 경영자를 향한 신뢰는 회사가 잘 나갈 때보다 어려울 때 더욱 선명해진다. 실적이 좋을 때 성과를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진짜 시험대는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다. 위기 속에서 경영자가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직원들에게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 과거의 약속을 지켜내는지에 따라 조직의 신뢰 수준이 판가름 난다.

직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은 리더의 '일관성'이다. 어제와 오늘의 기준이 다르지는 않은가, 내 사람과 남의 사람에게 다른 잣대를 대지는 않는가,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직원에게만 엄격하지는 않은가. 경영자의 말 한마디가 자신의 평가와 승진, 보상, 나아가 직장 생활의 질 자체를 결정하기에 직원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집요하게 리더를 관찰한다.

◆ 재무제표에는 없는 '낮은 신뢰'의 막대한 숨은 비용

신뢰를 그저 리더 개인의 성품이나 감정적인 문제로 치부하면 경영의 중요한 축을 놓치게 된다. 미국의 경영학자 커트 덕스(Kurt Dirks)와 도널드 페린(Donald Ferrin)은 40년간 축적된 리더 신뢰 관련 연구 106편을 메타 분석해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직원의 이직 의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직속 상사에 대한 신뢰보다 '최고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직속 상사 때문이다"라는 흔한 통념은 절반만 맞는 셈이다.

신뢰가 부족한 조직의 풍경은 대체로 비슷하다. 경영자는 직원이 미덥지 않으니 끊임없이 추가 보고를 요구하고, 결재 단계를 늘리며, 회의를 소집하고, 실무를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숨은 비용'이 발생한다.

예컨대 20명 규모의 조직에서 주간 회의를 1시간 늘리면 연간 1,040시간이 공중으로 증발한다. 직원 한 사람의 수개월 치 근무 시간에 해당하는 엄청난 비용이다. 불필요한 결재 단계 하나, 보고서 한 장도 마찬가지다. 신뢰는 재무제표에 기록되지 않지만, 신뢰가 없어서 치르는 막대한 비용은 인건비 항목 어딘가에서 이미 줄줄 새고 있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그다음이다. 통제와 확인이 늘어나면 직원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하고 경영자가 '원하는 정답'만 찾으려 든다. 틀리지 않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피하고, 문제가 생기면 문책당할까 두려워 덮어버린다. 움직이지 않는 직원을 보며 경영자는 다시 통제를 강화한다. 수많은 조직이 이 치명적인 악순환의 굴레에서 맴돈다.

◆ 직원들은 두려워서 움직이는가, 믿어서 움직이는가

그렇다면 '나는 신뢰받는 경영자인가?' 직원들에게 직접 묻는다고 솔직한 답을 듣기는 어렵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직원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이 질문에 답을 구하고 싶다면 다음 세 가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첫째, 나쁜 소식이 지체 없이 올라오는가? 좋은 소식만 빠르게 닿는다면 이상 신호다.

둘째,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직원이 솔직하게 지적하는가? 회의실에서 하지 못한 말이 복도에서 오가고 있다면, 그 조직의 진짜 회의실은 복도인 셈이다.

셋째, 위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직원이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오는가, 아니면 없었던 일처럼 덮으려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뼈아픈 질문이 남는다. "우리 직원들은 나를 두려워해서 움직이는가, 아니면 나를 믿기 때문에 움직이는가?"

지시를 따른다는 겉모습만 보면 두 가지는 꽤 비슷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에 남는 최종 결과물은 천지 차이다.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경영자의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일하지만, 신뢰로 움직이는 조직은 경영자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일한다.

경영자는 직급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돈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촘촘한 규정과 시스템으로 행동을 통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조직을 오래, 그리고 멀리 끌고 가기는 어렵다. 리더의 진짜 영향력은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신뢰받는 경영자는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직원은 경영자의 의도를 믿고 스스로 판단하며, 경영자는 직원의 판단을 믿고 과감히 권한을 위임한다. 그때 비로소 조직에 진정한 자율성이 싹트고, 책임감이 깊어지며, 성장의 속도가 붙는다.

신뢰는 결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약속을 지키고, 언제나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며, 위기의 순간에 앞장서 책임지고, 직원의 쓴소리를 끝까지 경청하는 행동들이 쌓여 완성된다.

그러니 경영자가 해마다 결산해야 할 것은 매출과 이익만이 아니다. 경영자의 자리는 권한으로 얻을 수 있지만, 리더를 향한 신뢰는 결코 권한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bjlee@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