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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재연 박사의 '트렌드 경영'…사장실에 걸린 상패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

입력 2026-11-02 06:35

창립 30년 회사의 직원이 라디오에 보낸 사연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비욘드포스트 이봉진 기자] 상패는 외부의 평가다. 직원이 사장을 자랑하는 것은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이 내리는 진정한 평가다.

중소기업의 조직문화 교육을 하다 보면 사장실에 들어갈 일이 많다. 사장실 한쪽 벽에는 대개 상패가 줄지어 있다. 협회에서 받은 공로패, 지역사회 활동으로 받은 감사패, 각종 수상 기록 등 사장이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보여주는 훈장들이다.

그 화려한 벽 앞에 설 때마다 질문 하나가 떠오르곤 했다. '이 수많은 상패 중, 직원들이 직접 준 것은 과연 몇 개나 될까.'

■ "저희 사장님, 전국적으로 칭찬 좀 해주세요”

얼마 전 라디오에서 이런 사연을 들었다.

"저희 사장님 전국적으로 칭찬 좀 해주세요. 1년 가까이 쉬고 있던 50대 중반의 저를 덜컥 채용해 주셨어요. 지난 10월이 회사 창립 30주년이었는데, 뜻깊게 보내고 싶으시다며 전 직원을 일본 여행에 보내주셨습니다. 제일 좋은 식사와 잠자리로요. 평소에도 직원들 준다고 뭐든 한 박스씩 넉넉히 사 오시고, 수요일 영화 보는 날에는 팝콘과 음료까지 챙겨주세요. 우리 사장님 너무 멋지지 않아요?”

사연을 듣다 보니 회사 이름이 채 나오기도 전에 그 분위기가 무척 낯익었다. 지난 5년여 동안 임직원 교육과 조직 활성화 프로젝트를 함께해 온 바로 그 회사였다. 무척 반가웠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 직원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

사연에서 가장 화려한 대목은 단연 '30주년 전 직원 해외여행'이다. 그런데 그 직원이 가장 먼저 꺼낸 자랑거리는 여행이 아니었다. 1년 가까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50대 중반의 자신을 기꺼이 받아준 일이었다.

중장년의 재취업이 얼마나 막막한지는 경영자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경력과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일할 기회를 내어준 사장의 결정은 그 직원에게 무척이나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30주년 해외여행보다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같은 비용으로 훌륭한 여행을 보내주고도 직원들에게서 아무런 미담이 나오지 않는 회사가 있다. 사장이 큰돈을 들여 선물을 안겨줘도 직원의 마음에 가닿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여행은 단순한 일회성 선심이 아니라, 사장의 '평소 태도'가 한 번 크게 뭉쳐 드러난 결정적 장면으로 읽혔다.

■ 한 박스의 간식과 수요일의 팝콘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직원이 자랑한 내용의 절반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무엇이든 한 박스씩 사 오는 습관, 수요일 영화 감상 시간에 챙겨주는 팝콘과 음료 같은 것들 말이다.

거창한 행사는 뇌리에 오래 남는다. 하지만 직원들이 매일 피부로 느끼는 회사 분위기는 이런 작은 배려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다. 30주년 여행은 한 번이지만, 수요일은 매주 돌아온다. 직원들이 "회사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입을 모을 때, 그 온기는 사흘간의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라 그 앞뒤로 묵묵히 쌓인 수많은 수요일에서 비롯된다. 조직의 분위기는 일회성 이벤트보다 이런 소소한 배려가 일상으로 반복될 때 비로소 긍정적으로 바뀐다.

■ 5년 동안 묵묵히 변화를 함께 겪어낸 사장

물론 이 회사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은 대표의 성향이 조직 전체를 강하게 물들인다. 그래서 조직문화를 혁신하려면 직원보다 대표가 먼저 바뀌어야 하고,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장 어렵다.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자신의 방식을 내려놓고, 낯선 의견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스스로 틀렸음을 흔쾌히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회사의 대표는 그 험난한 변화의 과정을 5년이나 함께했다. 몇 달 만에 눈에 띄는 가시적 성과를 내놓으라고 실무진을 닦달하지 않았다. 직원을 훌륭하게 교육하고 성장시키면 결국 더 좋은 조건을 찾아 훌쩍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표는 '직원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꾸준히 투자하고 기다렸다.

단 한 번의 여행만으로 이런 훈훈한 사연이 방송을 타진 않는다. 5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묵직한 신뢰가 '30주년'이라는 특별한 계기를 만나 세상 밖으로 자연스레 터져 나왔을 뿐이다.

■ 30년을 버틴 회사, 밖으로 자랑하고 싶은 회사

중소기업이 30년의 세월을 이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업적이다. 수많은 경제적 위기를 넘기고 누군가의 소중한 일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온 귀한 시간이다. 하지만 회사가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과 직원들이 그 회사를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기업의 외형적 성과는 재무제표의 매출과 이익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회사가 진정으로 '좋은 회사'인지는 직원들이 밖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봐야 안다. 직원들이 회사에 자부심을 느끼고, 경영자를 굳게 신뢰하며, 자신이 일하는 곳을 타인에게 앞장서 자랑하고 싶어 한다면 세상에 그보다 값진 무형의 경쟁력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따뜻한 라디오 사연은 화려한 금빛 테두리를 두른 채 사장실 벽에 걸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연이야말로, 그 회사가 30년 동안 외부에서 받아온 그 어떤 상패보다도 위대하고 값진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시켜서 한 칭찬이 아니라, 직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짜 찬사이기 때문이다.

사장실 벽을 가득 채운 번쩍이는 상패보다 훨씬 더 자랑스러운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함께 땀 흘려 일하는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 사장님'을 널리 자랑하고 싶어 하는 그 애틋한 진심이다.

bjlee@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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