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20대 국정과제...규제개혁

포항공항 주변 중소기업들의 건물 신·증축, 군사시설보호법상 고도제한 이유로 불허
경북 포항시 동해면 상정리에서 석회질 비료제조업체인 동양산업을 경영하고 있는 남인수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해군항공사령부(구 제6항공전단)이 2007년 12월부터 시행하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군사시설보호법)상 고도제한에 걸린다는 것을 이유로 포항공항 주변 중소기업들의 공장 신·증축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관련 법을 시행하기 전에 지은 기존 공장 건물보다 낮은 건물조차 해군 반대로 지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동양산업은 지난 2010년부터 공장 사무실과 창고 건물 신축과 직원들 편의시설인 샤워장 증축을 추진했으나 해군항공사령부는 관련 법상 고도제한을 넘긴다는 이유로 건물 신·증축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10년 넘게 고수하고 있다.
해군항공사령부는 당시 “군사시설보호법상 동양산업 신규 건축물은 비행 안전에 필요한 고도제한을 초과하는 만큼 어떤 건축 행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동양산업 공장은 관련 법상 비행안전 2구역(해발기준 105.4m)으로, 3층짜리 건물을 세우면 높이가 해발 134.45m로 고도제한을 29.1m 초과해 허가할 수 없다는 게 해군의 입장이었다. 이 중 샤워장은 2011년 해군 반대로 포항시 건축허가를 받지 못한 채 원료 가공공장 건물 바로 옆에 면적 27㎡, 폭 8.2m, 높이 2.3m 단층 건물로 지었다.
남 회장은 “군사시설보호법이 시행되기 전인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지은 동양산업 공장의 기존 건축물은 해발 기준 높이보다 30m 더 높게 지었고, 공항 주변 20여 개 다른 중소기업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샤워장은 높이가 2.3m로 1991년 지은 기존 공장 건물보다 낮고, 공장 주변을 산(조향산 해발 245.6m, 운장산 해발 234.0m)이 에워싸고 있어 공장 건물을 새로 짓는다 해도 비행 이착륙에는 별다른 장애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군항공사령부 관계자들은 “신·증축 건물이 비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비행안전평가 용역 결과를 제시할 경우 건물 신·증축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건물 신·증축이 비행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용역보고서를 제출하자 “추가로 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구하면서 “용역보고서를 추가로 낸다고 해도 허가를 받는다고 확답할 수는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동양산업 “군 공항을 이전하지 못하면 관련 법 적용이라도 완화해 달라”
남 회장은 탄원서에서 “2012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시정권고를 내렸지만, 해군은 일관되게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기업을 괴롭히는 악법의 고리를 끊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동양산업 기존 공장 건축물은 물론 인근 인공장애물인 송신탑이나 아파트단지도 모두 비행안전 제2구역 고도제한를 초과하고 있다”며 “이런 사실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남 회장은 “관련 법을 지키겠다는 해군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고도제한을 넘긴 인공장애물이나 건물이 여러 개 들어서 있는 만큼 법 규정을 고수하기보다 탄력적으로 완화하는 것이 중소기업을 위해 좋은 일 아니냐”고 밝혔다.
해군이 관련 법 고수를 주장하지만 실제로 포항에서 대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인 적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스코는 2009년 6월 포항공항 비행안전구역에 신제강공장을 국방부와의 사전협의 없이 짓다가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 결정에 따라 해군이 기존 활주로를 공장 반대방향으로 378m 옮긴 덕분에 기존 비행안전구역을 5구역에서 6구역으로 완화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마친 바 있다.
남 회장은 “포항공항 주변 중소기업들이 비행안전2구역 고도제한에 걸려 건축행위를 제한받는 것은 포스코의 사례를 볼 때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장이 생산활동을 하려면 신·증축이 자유로워야 한다”며 “최소한 군사시설보호법 시행 이전에 지은 건물 높이까지는 공장의 신·증축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해군의 공장 건물 신·증축 불허 행위는 과도한 건축규제인 것은 물론 명백한 사유재산권 침해행위인 만큼 해군 공항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군사시설보호법을 고쳐 중소기업을 위해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어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동양산업의 건축물은 비행안전구역 안에 있어 해군 6항공전단과의 비행안전협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비행안전구역에 포함된 포항 지역 중소기업 상당수가 이런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있어 군 당국과 근본적인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군, “비행 안전을 위해 비행 고도제한 꼭 지켜야” 주장
해군항공사령부 관계자는 서면 답변을 통해 공항 주변 건물을 신·증축할 때 2007년 12월 군사시설보호법 시행 이전에 지은 기존 건물보다 낮게 지으면 비행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비행안전구역에서 비행 고도제한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허가가 가능하며, 범위를 초과한다면 허가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중소기업이 공항 주변에서 과도한 규제를 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해군항공사령부는 관련 법에 따라 군사작전과 비행 안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군사시설 보호 심의위원회를 열어 건축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밖에 비행안전구역 비행 고도제한 규정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민원에 대해 “비행 안전은 조종사 생명과 주변 주민들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비행 고도제한 범위는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정부는 12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규제시스템 혁신을 통한 경제활력 제고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전방위적 규제혁신을 통해 민간의 자유와 창의가 최대한 발현되는 자유롭고 효율적인 시장경제 조성과 함께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전 과정을 현장, 수요자 중심으로 밀착 관리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가 현장에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포항공항 주변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이번 기회에 해군과 포항시가 비행안전평가를 통해 고도제한 규정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지나친 규제라고 진단할 경우 규제를 풀어주면 중소기업이 경영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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