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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포토에세이]...음식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

입력 2025-06-30 08:10

[신형범의 포토에세이]...음식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
대만 카오슝(高雄)에서 찍은 사진을 보다가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열기가 좀 식은 것 같은데 평양냉면 붐이 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가 아는 ‘평양냉면 먹는 방식’에 따라 서로 자기 말이 맞는다며 매니아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겨자나 식초를 넣지 않고 슴슴하게 그냥 먹거나 또는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식초를 살짝 뿌리는 등 근거가 불분명한 ‘썰’들이 정통이라며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19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 때 평양의 유명한 식당 옥류관에 다녀온 남한 인사들이 옥류관 직원에게 평양냉면 먹는 법을 물었더니 식초, 겨자, 양념장 등을 취향에 따라 듬뿍 넣어 먹는 게 최고라고 한 것이 전해져 남한의 ‘평냉’ 매니아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졌습니다.

어쨌든 평양냉면이 유명해지기 오래 전부터 적통을 잇는(다고 주장하는) 유명한 노포들이 있습니다.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은 같은 ‘의정부 계열’로 꼽힙니다. 소고기 육수를 고집하는 우래옥과 장충동 평양면옥 그리고 마포의 을밀대를 소위 ‘4대천왕’이라 주장하지만 지금은 신흥 ‘강자’들이 많아져 어디가 낫다는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지난 주 친구가 먹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노포 중 한 곳을 찾았습니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하고 옆집을 사서 확장했지만 시설은 낡고 불편합니다. 장맛비가 쏟아져 사람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11시 30분쯤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이미 50미터 정도 늘어서 있었습니다. 번호표를 나눠주거나 앱을 이용해 대기자 명단을 등록하는 맛집도 많은데 이 집은 명품매장처럼 여전히 사람들을 줄세웠습니다.

줄 서는 과정도 맛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동안 주방에서 면 뽑는 직원, 녹두전 굽는 아줌마, 음식을 나르며 서빙하는 사람, 또 홀을 총괄하며 카운터에 앉은 이(오너 가족 중 한 사람인 듯)의 분주한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들의 얼굴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지루하며 노동에 찌든 고단함이 배어 나왔습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즐거움이나 보람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 혼자였다면 기다리지 않고 다른 집으로 갔겠지만 친구의 기대가 너무 커서 내색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밖에서 오래 기다려 시장한 데다 맛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런 기분으로 먹은 음식이 맛있을 리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한때 정치인, 방송국 간부들의 단골이던 이 식당 창업주가 사망하고 형제들간 다툼과 육수 공장과 분점을 내는 과정에서 소송까지 벌였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이들에겐 일상이고 지루한 반복이지만 냉면은 밥처럼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어쩌다 마음먹고 맛집을 찾은 손님들은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산을 쓰고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불편한데 홀을 안내하는 직원의 심드렁한 얼굴을 마주하면서 냉면 한 그릇에 16000원이나 하는 식당을 굳이 찾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많은 노포들 중 한 곳을 지워버린 것은 소득이라면 소득이겠지요.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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