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식의 포섭은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생활정보 앱이나 SNS 채팅방에 올라온 단기 고수익 아르바이트 공고에 연락했다가 ‘수거책’, ‘송금책’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처음엔 택배 배송이나 심부름 정도로 알고 시작했지만, 막상 해보면 범죄 조직의 말단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런 범죄 구조 속에서 가담자가 자발적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정말 몰랐고, 누군가는 어느 정도 알면서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눈을 감는다. 이런 상황 차이를 법적으로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 것일까?
실제 법적 판단은 단순하지 않다. 처음부터 속아서 시작한 경우라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직접 가담했다면 ‘몰랐기 때문에 무죄’라고 보긴 어렵다. 해외취업 사기처럼 사전에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범행을 실제로 수행했다면 일정 수준의 형사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응 없이 조사를 받거나, 이미 연루된 사실을 숨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은 아니다. 법적으로는 스스로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수사에 협조한 경우, 양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판례를 살펴보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가 수사 초기 단계에서 자발적으로 가담 사실을 인정하고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한 경우, 이는 재판부가 양형 판단 시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와는 달리, 범행이 발각된 이후에야 소극적으로 사실을 시인하거나, 초기에 관련 사실을 부인하다가 물적 증거에 의해 뒤늦게 인정한 경우에는 처벌 수위가 현저히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조직과의 연계성, 가담의 적극성, 범행 구조에 대한 이해 수준, 범죄 수익의 수령 여부 등이 형량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가담 기간이 단기이고 △행위의 역할이 단순하며 △경제적 이익을 실질적으로 취하지 않았고 △피해 회복이 일부라도 이루어진 경우에는 정상 참작의 여지를 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관계는 단순 주장만으로는 입증되기 어렵고, 수사 및 재판 단계에서 일관된 진술, 객관적 자료 확보, 피해자와의 합의 노력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본인의 가담 정도와 사정을 보다 명확하게 입증하고, 형사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초기 대응부터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처음부터 범죄에 가담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상황에서는, 단순히 “몰랐다”는 주장만으로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고, 본인의 역할과 가담 경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수사와 재판에서 핵심적으로 판단되는 요소는 범죄에 연루된 계기 그 자체보다는 ‘범죄임을 인식한 이후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있다. 조직과의 연계가 깊거나 이후에도 계속 범행에 협조했다면 책임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빠져나와 자진 신고하거나 수사에 적극 협조한 경우에는 선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법무법인 YK 강남 주사무소 김형원 변호사는 “결국 중요한 건 ‘속아서 가담했느냐’보다 ‘그 후 어떤 행동을 했느냐’다. 범죄임을 인식한 이후에도 묵인하거나 더 깊이 관여했다면, 아무리 시작이 피해자였다 하더라도 처벌은 불가피하다. 반대로 즉시 빠져나와 신고하거나, 수사에 적극 협조해 정황을 명확히 밝혀낸다면 최소한의 선처는 기대해볼 수 있다. 사전에 이런 위험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미 연루됐다면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큰 피해를 막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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