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어느 찬란한 봄날 아침에](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40708010409828046a9e4dd7f1822257147.jpg&nmt=30)
나한테는 없는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하다’는 뜻의 ‘살갑다’라는 말은 사람의 품성만 뜻하지 않습니다. 본래는 공간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었습니다. 집이나 그릇이 겉보기보다 속이 넓을 때 ‘살갑다’고 말합니다. 공간을 설명하던 말이 사람의 품성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살갑게 군다’는 건 마음 속에 남이 들어와 쉴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내 속이 나로 꽉 차 있으면 타인이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빈방처럼 마음에 여백이 있어야 살가움도 나오는 법입니다.
어제부터 우리 동네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는 김포는 벚꽃이 한창인 여의도보다 며칠 늦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왜 늦게 피냐고 타박하는 사람도 없고 나무들은 매년 꼬박꼬박 꽃을 피웁니다. 꽃이 진 자리에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가 맺히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 성실하게 노력하고 애쓴 결과라고 생각하면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바뀌는 계절을 감당해내는 나무가 달리 보입니다.
사실 나는 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봄이 주는 찬란함에 동참하지 못하고 나만 혼자 우울한 기분을 계속 안고 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봄을 오해하고 있어. 햇살은 따뜻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참 좋은 계절, 안심하라는 듯 상냥한 척하지만 봄은 원래 그렇게 상냥한 존재가 아니야.”라는 어느 드라마 대사가 나한테는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봄은 사계절 중에서 가장 화사하고 찬란하지만 잔인합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세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그 시간에 영영 돌아오지 못한 30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떠오릅니다. 만약 겨울에 누가 죽으면 계절이 함께 애도해 주는 것 같은데 봄에는 누가 죽어도 세상은 속절없이 화창하기만 합니다. 그 불일치가 봄을 잔인하게 만듭니다. 봄은 슬퍼할 겨를을 주지 않습니다. 따뜻한 공기와 꽃향기 속에서 슬픔은 자꾸 제자리를 잃고 애도는 계절에 묻혀 흐려집니다.
나무는 올해도 같은자리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묻지도 않고 망설임도 없이 보란 듯이 피워냈습니다. 나는 나무처럼은 못하겠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때마다 서성이고 매번 새로운 감정을 느낍니다. 다정함과 살가움은 개인이 혼자 닦는 마음 수양의 결과가 아닙니다. 시간에 쫓기고 경쟁에 내몰린 사람에게 마음을 넉넉하게 가지라고, 타인을 친절하게 대하라고 하는 건 강요입니다. 타인을 환대하는 공간은 내 삶이 비루하지 않을 때 생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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