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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포토에세이]...돈 룩 업

입력 2026-04-20 08:12

[신형범의 포토에세이]...돈 룩 업
넷플릭스의 2021년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장르 구분이 좀 애매합니다. 재난영화이면서 SF영화인데 내용은 블랙코미디에 가깝습니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한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생과 지도교수는 지구적 재앙을 경고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정치권은 눈앞에 닥친 선거와 대법관 지명 문제에, 재계는 이를 이용해 돈 벌 궁리만 하고 교수와 박사 연구생이 아무리 언론에 얘기해도 이들이 일류대학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무시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법. 혜성이 지구를 실제로 위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마련하자는 ‘룩업(Look up)파’와 하늘을 본다고 소용없으니 쳐다보지도 말라는 ‘돈룩업(Don’t look up)파’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시위를 벌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경기도의 작은 도시 노인들에게 시(정확히는 시 작법)를 가르치는 시인 ‘김용탁’은 손에 사과 하나를 들고 노인들에게 보여주며 묻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이 사과 몇 번이나 봤어요?” 그러자 한 할머니가 수줍게 “천 번? 만 번?” 하고 답합니다.

그러자 시인은 말합니다. “틀렸어요. 여러분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러면서 설명을 덧붙입니다. 사과를 본다는 건 사과의 어린시절을 상상해 보고, 사과 속에 스민 햇빛도 떠올려 보고, 다른 것도 보고, 돌려도 보고, 이렇게 보는 게 사과를 보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시 얘기를 이어가는데 시를 쓰기 위해서는 눈을 쓰라고 설명합니다. 눈을 쓰라는 얘기는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는 ‘시인은 자두를 보고도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느낌의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칼을 반만 밀어 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시인의 눈’을 갖지 못한 나는 이런 글을 읽으면 놀라고 좌절합니다. 한여름에 수박을 자르는 장면을 그렇게나 많이 봤는데, 심지어 내가 자른 적도 많은데 김훈처럼 한번도 놀라지 않은 나 자신에게 놀랍니다. 녹색이던 수박이 칼이 닿는 순간 빨강으로 바뀌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그렇게 찬란하게 펼쳐지는데 이 나이 될 때까지 왜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을까,라면서.

결국 ‘보는’ 게 문제입니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려고 보지 않았지만 나는 무지함으로 인해 세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박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고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진처럼 위로 올려다보는 아이들에게 “돈 룩 업(Don’t look up)”이라고 말하는 어른은 안 되고 싶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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