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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요즘은 연애를 어떻게 시작하나 봤더니

입력 2026-04-23 06:51

[신형범의 千글자]...요즘은 연애를 어떻게 시작하나 봤더니
젊은이들 사이에 요즘 대형서점이 의외로 ‘핫한’ 만남의 장소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어떤 소셜미디어는 교보문고가 ‘번따(번호 따임)의 성지’라며 노하우와 팁을 올려 놓은 곳도 있습니다. 왜 하필 서점일까요. 서점은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기 좋은 ‘전략적 요충지’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구체적인 방법도 공유되는데 주말 오후 4시가 ‘골든아워’라고 합니다. 이 시간에 한가한 사람은 솔로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 집에 널브러져 있기 쉬운 주말 오후에 혼자 서점을 찾는 사람이라면 부지런하고 진취적이며 자기계발에 진심일 거라는 거지요. 유튜브나 인터넷서핑 대신 독서로 지식을 탐구하는 지적이고 건실한 사람일 거라는 기대와 함께.

서점이 ‘번따’ 장소로 활용되는 건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신뢰감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술집이나 클럽이 아니라 서점에서 누가 연락처를 물어온다면 아무래도 경계심이 덜하고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를 보면 취향이나 성격까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층에 부는 ‘텍스트힙’ ‘독파민(독서+도파민)’ 열풍 속에 책 읽는 젊은이가 늘면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으로도 보입니다.

부작용도 있습니다. ‘번따’와 관련해 불편하다는 신고가 잇따르자 ‘소중한 독서의 순간이 낯선 대화나 시선으로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비치한 서점도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연간 독서량은 2013년부터 계속 하락해 지난해 처음으로 4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20대만 유일하게 직전 조사보다 독서율이 증가했는데 설마 ‘서점 번따’ 영향은 아니겠지요.

‘서점 번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트렌드도 있습니다. 일명 ‘로테이션 소개팅’인데 말 그대로 한 곳에서 여러 명을 돌아가면서 만나는 것입니다. 주최측이 마련한 도심의 한 카페에서 남자 12명과 여자 12명의 커플 리스트가 짜여집니다. 번호표를 단 남녀가 마주 앉아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고 10분 뒤에는 남성들이 다음 테이블로 옮겨가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빡빡한 만남이 끝나면 12명 중에 마음에 드는 상대의 번호를 제출하고 상대도 나를 선택하면 성공입니다.

사전에 나이대별로 조를 편성하고 키, 비만, 탈모 여부 등 다양하고 노골적인 조건들이 제시되는 것도 재밌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나이, 직업, MBTI, 종교, 정치성향 등이 적힌 인적 사항을 교환한 상태에서 만남을 갖는 거지요. 그래서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대다수 취미는 운동이고 ‘인생영화’도 비슷합니다. 또 정치와 종교는 중도와 무교라는 회색지대에 머물러 차별성이 없습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오답’이 되지 않기 위해 참가자들은 스스로 기획한 ‘가상의 자아’를 앞세우고 진짜 자기는 뒤로 숨는 거지요. 10분짜리 1인극 같기도 합니다.

만남 자체가 어려운 프로젝트가 된 현실에서 이렇게 효율성이 극대화된 시스템은 나름의 장점이 있어 보입니다. 반나절을 투자해야 하는 선이나 소개팅과 달리 짧은 시간에 많은 상대를 만날 수 있고 거절하는 데도 부담이 없습니다. 주선자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주최측이 최소한의 신원은 검증하기 때문에 ‘지인찬스’가 바닥났거나 데이팅앱이나 결혼정보회사의 불안감과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제법 매력적인 선택지가 됩니다.

예전의 인연이 장편소설이라면 로테이션 소개팅은 ‘쇼츠’ 같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쇼츠를 보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는 행동이 연애로 옮겨온 것과 비슷합니다. 10분은 한 사람의 서사를 파악하기에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결국 대화 주제는 직업, 거주지, MBTI 같은 규격화된 데이터로 겉돌고 판단의 기준은 외모라는 본능적인 정보로 수렴합니다. 더 괜찮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마주 앉은 상대에게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복사+붙여넣기’ 같은 자기 소개의 반복 끝에 공허한 피로감만 남습니다. 의미 없는 ‘쇼츠’로 몇 시간을 흘려보낸 것처럼.

서점이든 로테이션 소개팅이든 중요한 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솔직함과 용기, 그리고 거기서 진가를 알아보는 현명함입니다. ‘자만추(자연스런 만남)’도 처음 시작은 0.1초도 안 되는 불꽃 같은 번뜩임 아니었나요. 뭐가 됐든 젊은 청춘들을 응원합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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