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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내가 그 ‘형님’일지도 모른다

입력 2026-04-24 08:15

[신형범의 千글자]...내가 그 ‘형님’일지도 모른다
30cm 높이의 투명한 유리병에 콩을 절반 넘게 채웠습니다. 대학생 다섯 명씩 조를 짜서 각자가 예측한 콩의 숫자를 적고 3분간 논의를 거쳐 예측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모두 여섯 번의 예측치를 적게 했습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전체 평균이 정답인 1700개에 가까워지는 경향을 보였고 편차도 줄었습니다. 논의를 거듭하면서 정답에서 먼 숫자를 적은 참가자가 자기 생각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었습니다. A는 첫 번째 예측에서 거의 정답에 가깝게 썼지만 회의를 거듭할수록 정답과 멀어졌습니다. 반면 B는 처음엔 엉뚱한 숫자에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정답에 가까운 답을 써냈습니다. A와 B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논의 과정을 알아봤습니다.

A가 속한 그룹은 모두 같은 전공으로 서로 잘 아는 선후배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나이가 제일 많은 ‘형님’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논의 때 “형님 생각은 어때요?”라는 질문이 있었고 ‘형님’은 “900에서 1300 사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네 번째 논의부터는 의견을 거의 주고받지 않았습니다.

반면 B가 속한 그룹은 경영학 음악 인문학 등 전공이 다양하고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잘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다섯 번째 논의 때까지 상대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콩의 개수를 추정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각자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쳤습니다. 예상대로 A그룹 참가자들의 추정치가 B그룹 참가자들보다 정확도가 떨어졌고 특히 ‘형님’이 제시한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건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구성원의 다양성입니다. 정답을 알지 못하고 추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이 각자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의견을 제시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둘째, 서로 친밀한 사이면서 지배적인 의견을 내는 ‘형님’의 존재는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형님’의 의견에 기꺼이 따르려는 분위기가 그룹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찌감치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구성원들이 열심히 고민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눌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셋째, 상대의 의견에 동의해야 할 압박감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느슨하게 연결되고 서로 존대하는 사이에서는 합의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고 주어진 토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독립적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상황은 회사나 다른 조직에서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는 변화가 빠르고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복잡성이 높은 문제를 정의하고 답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때 구성원의 경험과 지식은 다양할수록 나은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자신의 의견을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형님’이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해진 방식으로 낭비 없이 실행할 때나 앞서 가는 경쟁자를 따라잡아야 할 때는 경험이 풍부한 ‘형님’의 지위가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속도보다 방향과 혁신이 더 중요합니다. 혹시라도 조직에서 내가 ‘형님’ 역할을 맡고 있다면 구성원들이 나를 중심으로 섣부른 ‘만장일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경계해야 합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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