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에 누워 있는 자의 이름은 자크 올리방이다. 향년 오십 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으며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해골은 잠시 생각하더니 땅에서 뾰족한 돌을 집어 들고 글자를 하나하나 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비문을 깨끗이 지우고 움푹 꺼진 눈으로 조금 전까지 자기 비문이 있던 자리에 다음과 같이 글을 적었습니다.
“이곳에 누워 있는 자의 이름은 자크 올리방이다. 향년 오십 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냉혹하게 굴어 아버지의 명을 재촉했다. 아내를 학대하고 자식들을 구박했으며 이웃을 속이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남을 등쳐먹었다. 그리고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남자가 몸을 돌리는 순간 모든 무덤이 열려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시체들이 자신들의 묘비명에 쓴 거짓말을 지우고 진실을 적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자는 그들이 모두 악인, 위선자, 거짓말쟁이, 파렴치한이었고 시기심이 많았으며 도둑질을 했고 사기를 쳤고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모든 선량한 아버지들, 정숙한 아내들, 신실한 아들들, 순결한 딸들, 정직한 상인들, 흠잡을 데 없는 남자와 여자들이 말입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 있는 자들이 외면하려 애쓰는 잔인한 진실을 적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고, 사랑받다 잠들었노라”로 돼 있던 아내의 묘비명은 어느덧 “비 오는 어느 날, 애인을 속이기 위해 외출했다가 감기에 걸려 죽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확실히 묘비명은 우리보다 서양이 더 활발해 보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고향인 크레타섬에 묻혔는데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비문이 있습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이츠는 “여기, 물에 이름을 새긴 자가 잠들다” 미국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을 새겼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물살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관련한 오해도 가끔 있습니다. 흔히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알려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문장은 원래 “이 근처에 오래 얼쩡거리다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의 오역이라는데 이마저도 사실이 아닙니다. 버나드 쇼는 화장해서 아내의 유골과 함께 자신이 살던 정원에 뿌려졌기 때문에 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따금 나도 내 묘비명을 상상해 봅니다. 묘비를 갖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치가 돼버린 시대지만 세상에 남길 마지막 메시지라는 점에서 어쩌면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