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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금보성 비엔날레’ 9월 30일까지 나주 송림 아트센터

김민혁 기자

입력 2026-08-12 10:51

금보성 비엔날레 포스터 /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금보성 비엔날레 포스터 /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뜨거운 한여름, 나주의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금보성의 대규모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전통적인 역사 문화의 배경과 첨단 에너지 혁신도시로서의 활력이 공존하는 나주 시내를 지나 시골길에 접어 들어 마주친 송림 아트센터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금보성의 압도적인 작품의 크기와 색채의 향연에 숨이 멎는 듯하다. 긴 벽면을 모두 채운, 세련되고도 친숙한 색의 어울림에 먼저 도취되고 나면, 작품 안에 선과 면의 구성적 요소로 씌여진 한글 “대한민국”을 읽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변에는 한글의 음절들을 소재로 하였지만 그보단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이 같이 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마주하니, 오랫동안 꿋꿋하게 한글을 현대 미술의 소재와 주제로 택한 작가 금보성은 누구이며 그의 한글 사랑,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작가는 그의 전시작을 ‘금보성 비엔날레’로 명명하였다. 이는 미술계의 공식언어는 아니지만, 작가가 특별한 자신의 개인전을 지칭하기 위해 선택한 메타포어이다. 비엔날레는 2 년 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작품 전시행사를 말하며, 대표적인 것으로 베니스, 상파울로, 휘트니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광주 비엔날레 등이 있다.

따라서 “개인 비엔날레”란 비엔날레의 규모와 수준으로, 특정 작가의 대표작, 신작, 설치, 아카이브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담아 집약적으로 요약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금보성 개인 비엔날레란, 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즉, 금보성 작가가 40 여 년 동안 구축해 온 “한글회화”를 중심으로, 회화, 대형 설치작품, 현장 제작, 레지던시, 연구, 학술 프로그램, 교육, 기록 및 아카이브를 통합적으로 구성하며, 한 작가의 예술철학과 창작 과정을 하나의 총체적인 연구, 전시, 문화현상의 체계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비엔날레가 다양한 작가와 국제 미술 흐름을 소개하는 것과 달리, 개인의 예술세계를 하나의 문화 콘텐츠이자 아카이브로 확장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더불어, 금보성 개인비엔날레는 한 작가이긴 하지만, 지역 커뮤니티의 협업과 숨결이 녹아난 작업이다.

전라도라는 지명에서 '라' 자가 바로 나주에서 유래했을 만큼, 나주는 역사적으로 천년 도시이며, 전라도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고을 이었다. 나주는 농업과 문화이 성하였고, 조선시대부터 뽕나무 재배와 양잠업이 활성화되었으며, 비단은 나주 지역의 중요한 산업이었다. 비단이 누에가 만든 천연실크라면, 인견은 나무 펄프로 만든 인조 비단으로 자연의 물질과 인간의 기술이 결합된 '인간이 만든 비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금보성은 나주의 섬유산업의 역사를 기리고자, 인견을 재료로 선택하였다. 따라서, 작품의 인견 바탕의 주름진 천은 단순히 작품제작의 재료가 아닌 역사의 기억과 커뮤니티의 노동이 은유화되고 응집된 작품의 버팀목이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 한강 비엔날레와 더윤 Inc 가 공동 주최하였고 금보성 아트센터가 주관, 예술가 신문 (The Artists Times)과 나주 송림 아트센터, 그리고 나주 미술관이 후원하는 프로젝트로, 이 작품은 너비 27 미터, 높이 5.5 미터의 대작으로, 과거 곡식을 보관하던 미곡창고를 문화 예술공간으로 전환한 송림 아트 센터의 긴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화 되어 가는 만큼, 수도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들이 경제 기술 문화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보이며 발돋움해온 지난 수 십년 간, 작가 금보성도 지방작가나 지방 문화산업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그 노력과 성과가 응집된 장소가 바로 나주 송림 아트센터이다. 작가는 자신의 한글 회화가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는 파종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나주라는 지역과 미곡 보관 창고였던 아트센터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금보성은 한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한글의 기본 문자 또는 더 나아가서 자음과 모음의 분절체를 작품의 기본 요소로 한글의 가치와 깊은 의미를 표현하고자 지난 40 년간 작업해온 작가이다. 작가는 한글에 대한 소명의식을 “유네스코 등재될 가치가 있는 한글이 인구 감소로 인해 뒷걸음칠할 위험이 있다. 대한민국의 문화의 척추인 한글은 우리의 정신이며 인문학의 보고인 철학이 담겨 있고, 한글은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입니다. 한글이 문자나 소통의 제한적 기능이 아닌, 더욱더 다양하게 활용되고, 확장되길 기대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글은 1443 년 조선 4 대왕 세종대왕이 창제하고 1910 년, 주시경 등 한글학자들에 의해 한글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는, 크다, 바르다, 하나를 뜻하는 고유어인 “한”에서 비롯되었다. 한글창제 당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훈민정음 (訓民正音)이라 하였다. 작가는 한글창제의 정신과 구성요소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뜻을 회화를 통해 바르게 가르치고 전하기 위해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을 기하학적 추상과 색면 추상으로 재구성하여 색, 면, 구조의 건축적 조형 요소로 변환하는 작업을 해왔다.

금보성이 시인으로 출발하였고 시작업을 계속해온 작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문자를 회화의 요소로 생각한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미술사학적으로도 20 세기 초의 많은 모더니스트들이 문자를 회화의 일부 요소로 사용해 왔다. 그 예는, 피카소등 종합기 입체파 작가들이 문자나 기호를 작품속에 포함시키는 콜라쥬, 이태리 미래주의, 다다, 구축주의, 그리고 60 년대의 개념주의 작가들에서 허다한 예를 볼 수 있다. 반대로 프랑스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시를 단지 읽힌다기 보다는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작품으로 제시하면서, 칼리그램 (calligrame) 이라는 용어를 창안하였다. 그는 시의 내용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의 배치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함으로써 문학과 시각예술을 결합하였다.

'칼리그램(Calligramme)'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운 필적(calligraphie)'과 '표의문자(idéogramme)'를 결합한 신조어이다.i) 그의 시는 그 이후 구체시 (concrete poem)와 개념주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ii )금보성의 작품에서도 기하학적 분절체로 구성을 한 면모나 다층적 시각으로 묘사된 기하학적 형상의 음절등은 입체파와 러시아 구축주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미술사의 글자작업을 한 작가들 중에서, 어떤 특정 언어의 깊은 조형적 가치와 정신성을 동시에 연구하며 작업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모더니스트들은 현실에 대한 표상인 기표 (signifier) 로서 – 완전 추상으로 진행되는 분석기 입체파 단계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구상적 현실에 대한 힌트로 임의적인 문자를 콜라쥬로 포함시킨 경우-또는 개념미술가들의 경우, 아이디어도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기존 미술에 대한 항거로서, 아이디어 (개념)을 대표하는 문자나 문장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사용했을 뿐이다.

금보성이 생애를 바쳐 노력한 것은 한글의 조형미는 물론이려니와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이다. 예를 들면, 작품 “대한민국”의 각 음절 중에서도 자음과 모음이 은유하는 것들을 연구하였다. 예를 들면, 하늘을 의미하는 점이나 원, 땅을 의미하는 횡선, 사람을 의미하는 종선이 결합하여 ㅎ 자를 만들어 내고, 이는 하늘(천), 땅(지), 인간(인)이 응축된 훈민정음 한글의 근본 원리이다. 한글이 창조되기 이전 사용하던 한자는 표의문자 즉 소리가 아닌 사물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한글은 대표적인 표음문자로 글자 자체가 뜻을 가지는 대신에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문자이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각 발음과 발음 기관을 연결시키고, 이를 방위와 계절과 연결시켰다.iii) 금보성은 자음과 모음 알파벳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문자인 한글에서, 그 기본 자모음에서도 의미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가정에 초점을 두었다.

작가는 ‘한’이라는 문자를 천지인이 녹아들은 글자로 바라보며, 우리는 모두 한민족 즉 우주를 품는 큰 민족이므로 호연지기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문자의 ‘속내’를 통해 의미를 부여했다.

금보성 작가는 “‘ㄱ’은 기준, 공의, 공평의 의미. ‘ㅅ’은 소통의 의미. 두개의 크고 작은 막대는 사람이 기대어 있는 이미지를 소통으로 명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라고 말한다.

봉인된 것을 해제하는 것은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세종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하는 금보성의 시도는, 간학문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적절한 작업이고, 선교사였고, 행정가이며, 시인인, 화가 금보성만의 특권이며 융합의 기술이기도 하다.

그의 색면 추상이 한국 전통의 색동 조각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작가는 전한다. 색동은 오방색 즉 다섯가지 방향의 색채인 청.적.황.백.흑에 대한 한국의 애정이 모든 생활의 방편 가운데 녹아 있는 한 예로 이해되어왔다. 처마밑의 단청, 색동 저고리, 복주머니와 조각보, 음식 고명, 혼례복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 색을 두루 쓰는 것이 풍수지리와도 연결되어있는 한국의 전통 우주관 ‘원할한 기의 소통을 통한 음양 오행설과 생기충천’의 생활화였다면, 금보성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공동체 정신으로 읽어냈다. 특히 조각보는 남은 천조각을 모아 천을 만드는 근검절약의 문화, 세련된 배색이 만들어내는 축적된 미의식의 발현으로 보았다.

회화의 덕목으로 금보성이 가치를 두는 항목은 배색과 형태 이외에도, 놀이, 해학, 신명등 한국성이 깃든 미학 위에 한글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아이들이 종이 찢어 붙이는 놀이 (콜라쥬)와 윷놀이에서 영감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윷놀이에서 윷을 공중에 던지듯이, 그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상상으로 공중에 투척하여 회전하며 낙하하는 이미지를 정지시킨 후 캔버스에 그려내는 것이다. 씨를 파종하듯 문자를 던지는 것은 해체가 아닌 새로운 생명을 뿌리는 것이다.

피카소등 입체파 작가들이 시간성의 개념을 이차원 회화에 적용하여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다각적 시각을 한 화면에 내포했다면, 금보성은 역사의 시간 속에 살아 움직이며 발전해온 유기적 구조체인 한글을 표현하였다. 그는, 색면 추상,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현대미술의 문법에 맞추되, 한국인만이 가진 공통의 역사, 문화, 정신을 한글이라는 미디움을 통해 표현해보고자 하였다.

그의 한글 회화 작업은 이미 40 년전에 시작되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탈구조적 해체주의, 미래지향적 융합주의는 그의 회화창작 이외에도 생활가운데 실천되고 있다. 금보성 아트센타를 경영하며 세운 고유한 원칙들과 새로운 시도들 가운데, 한글 회화를 중심으로 한 이번 개인 비엔날레는 단연코 괄목할만한 성과일 것이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 또는 한류세계화의 중요한 축인 한글 보급, 한국학 센타의 개설, 한글 수업 확장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는 금보성의 작품 “대한민국” 과 다른 한글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한글의 조형적, 철학적, 정서적, 그리고 문화 예술적 가치를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금보성 개인 비엔날레의 독창적인 가치이다.

이정실 교수 /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이정실 교수 /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글 :이정실 교수(미술사학자. 죠지 워싱턴 대학교)

i 기욤 아폴리네르, 「킬리그램 (Calligrammes: Poèmes de la paix et de la guerre, 1913-1916)」, Mercure de France, 1918.
ii 이정실,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석사논문 1990.
iii 이기문, 『훈민정음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 강신항, 『훈민정음 연구』,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7; 김슬옹, 『훈민정음 햬례본 함께 읽기』, 마리북스, 2025.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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