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를 내는 것과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직원들은 그를 ‘카리스마 있는 리더’라 부르고, 조직은 그의 강력한 추진력에 기대어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활발했던 회의에서 점차 반대 의견이 사라지고, 직원들은 경영자의 눈치만 살피기 시작한다.
유능한 인재들은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보다 상사의 의중을 먼저 헤아리는 데 급급해진다.
겉으로는 강력한 리더십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직의 내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자본인 '신뢰'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 매력적인 독재자, SOB(Seductive Operational Bully)
글로벌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리더를 'SOB(Seductive Operational Bull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매력과 뛰어난 실행력을 갖췄지만, 동시에 공격적이고 조종적인 행동으로 구성원을 억압하는 독성 리더를 뜻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나쁜 상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담한 비전을 제시하고,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며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구원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진짜 문제는 자신의 매력과 성과를 무기 삼아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 시작된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은 능력 있는 인재로 치켜세우지만,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조직의 발목을 잡는 불평분자로 취급한다. 실무 역량보다 맹목적인 충성심을 우위에 두고, 공개적인 망신이나 교묘한 감정적 압박을 도구 삼아 구성원을 통제한다.
결국 직원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보다 상사의 기색을 살피는 데 에너지를 쏟고, 뼈아픈 진실 대신 듣기 좋은 달콤한 허위 보고를 택하게 된다.
◆ 성과를 내는 상사와 신뢰를 만드는 리더
기업 현장에서 흔히 범하는 치명적인 착각이 있다. 바로 '당장 성과를 내는 상사가 곧 좋은 리더'라는 맹신이다.
물론 기업을 이끄는 리더에게 성과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성과 달성이 장기적인 리더십의 질(質)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 일시적으로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끌어낼 수는 있다. 강압적인 지시로 단기간에 목표 수치를 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자생력은 점차 시들해진다.
반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리더는 구성원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견을 기꺼이 허용하며,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문화를 만든다.
겉보기에는 의사결정이 다소 느려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조직은 특정인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단단한 힘을 갖게 된다.
리더의 진가는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명확히 드러난다. 리더가 없으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마비되는 조직인가, 아니면 리더가 없어도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조직인가.
◆ 왜 독성 리더는 조직에서 살아남는가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현상이 독단적인 상사 개인의 성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직이 오로지 '매출과 실적'이라는 단편적인 잣대로만 리더를 평가한다면, 구성원을 억압하고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리더라도 숫자만 맞추면 계속해서 승진하고 보상받는 모순이 발생한다.
더욱이 상사의 입맛에 맞추는 '예스맨' 관리자들이 주변을 에워싸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들은 경영자에게 긍정적인 신호만 보고하고 현장의 불만은 차단하며, 상사의 폭력적인 언행마저 ‘강력한 리더십’으로 포장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경영자는 자신이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잘 이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견이 없는 상태를 끈끈한 단합으로 오해하고, 직원들의 체념 섞인 침묵을 긍정적인 동의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침묵은 결코 신뢰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때로는 이미 마음이 떠나 이직을 준비하는 자들의 조용한 항거일 뿐이다.
◆ 경영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4가지 질문
독성 리더십이 조직에 뿌리내리는 것을 막으려면, 리더의 겉치레 카리스마가 아닌 '실제 행동'을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 경영자는 스스로 다음 질문들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첫째, 내 주변에는 솔직하게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둘째, 실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관리자의 부적절한 태도를 눈감아주고 있지는 않은가?
셋째, 직원들은 나와 대화할 때 자신의 진짜 생각을 말하는가, 아니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는가?
넷째, 유능한 핵심 인재들이 회사를 떠날 때, 그 진짜 이유를 진지하게 추적해 보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형식적인 다면평가나 익명 설문조사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
실제 회의에서 발언권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누가 짐을 떠안는지, 관리자들이 부하 직원의 성장을 진심으로 돕고 있는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리더십은 화려한 자기평가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증명되기 때문이다.
◆ 조직의 수준은 경영자의 태도를 넘어서기 어렵다
경영자가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관리자들은 그것을 생존의 기술로 배운다. 경영자가 충성심을 강조하면 관리자들은 실력보다 아첨을 선택한다. 경영자가 이견을 불편해하면 조직 전체가 침묵을 학습한다.
반대로 경영자가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불편한 보고에도 귀를 기울이면 조직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관리자가 상사의 뜻보다 조직의 원칙을 우선하며, 성과와 함께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좋은 리더는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자신을 믿고, 때로는 자신에게 반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카리스마는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다. 그러나 신뢰만이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한다.
기업이 진정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매력적인 독재자를 영웅으로 만들기보다 성과와 인격,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갖춘 리더를 키워야 한다.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bjlee@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