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2.12.10(토)
[비욘드포스트 김세혁 기자]
“인간과 AI가 융합하는 ‘네오 휴먼’은 이상적인 자아실현의 길이다. 절대 먼 미래가 아니다. 불과 수십 년 후 우리의 이야기다.”

삶의 의지를 갉는 불치병에 맞서려 스스로를 사이보그화한 영국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 모건 박사가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의 몸을 버리고 기계를 택한 점에서 논란도 됐지만 로봇을 활용한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한 박사의 삶은 그 자체가 과감한 도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6월 15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은 피터 스콧 모건은 2017년 전신의 근육이 쇠약해지는 난치병 근위축성 측색경화증(ALS), 즉 루게릭 진단을 받았다. 남은 삶은 길어야 2년. 로봇공학에 한평생을 바친 박사는 이때부터 기계를 이용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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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세상을 떠난 영국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 모건 박사. 세계 최초로 스스로 사이보그화한 인물이다. 〈사진=피터 스콧 모건 트위터〉

6월 15일 세상을 떠난 영국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 모건 박사. 세계 최초로 스스로 사이보그화한 인물이다. 〈사진=피터 스콧 모건 트위터〉

루게릭병에 걸리면 신경계가 손상돼 마비가 일어나고 말하거나 음식을 삼키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결국 90%는 질식이나 영양실조로 대략 5년 안에 사망한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도 루게릭병을 앓았다. 피터 스콧 모건 박사는 난치병과 싸우기 위해 병든 육신을 버리기로 했다.

종교계에서는 윤리 문제를 제기했다. 부모가 준 몸을 기계로 바꾼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피터 스콧 모건은 의연했다. 오히려 과학자로서 탐구심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사이보그화 수술을 받으려 한다며 주위를 설득했다. 실패한대도 자신의 도전은 미래 인간의 삶을 위해 충분한 가치가 있다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수술대에 오른 박사는 위와 방광, 결장 등 소화기관을 제거하고 튜브와 기계장치를 부착했다. 특수 제작한 휠체어에 올라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침이 폐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후두 절제술도 받았다.

목소리는 컴퓨터를 학습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한쪽 눈동자 움직임으로 컴퓨터를 통제하기 위해 눈 수술도 받았다. 아바타를 제작해 컴퓨터 화면으로 얼굴 표정이나 행동을 대신하도록 했다. 2019년 11월, 그렇게 세계 최초의 사이보그 인간 피터 2.0이 탄생했다.

반은 인간, 반은 기계가 된 박사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이 피터 1.0이며, 로봇화한 새로운 육신이 피터 2.0이라고 정의했다. 사이보그가 된 뒤에도 박사 특유의 낙천적 성격과 학자로서 탐구심은 변하지 않았다. 로봇을 활용해 난치병을 극복할 연구를 하느라 24시간이 모자랐다.

기구한 운명에 맞선 불굴의 정신을 담은 박사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소개됐다. 지난해 4월 초 발간된 ‘피터 2.0: 휴먼 사이보그(Peter 2.0: The Human Cyborg)’다. 박사는 자신이 쓴 책에서 사이보그 수술 과정은 물론 수술 전후의 심경을 상세하게 전했다.

책에 등장하는 박사의 이야기는 적잖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로봇이 된 뒤에도 기쁨이 충만한 박사의 의연함은 비슷한 난치병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 박사는 출판을 기념한 인터뷰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던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멀쩡한 사람들은 제 말이 우습거나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솔직히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된다”고 웃었다.

사이보그가 된 뒤에도 박사의 유머감각은 여전했다. 그는 “피터 2.0이 된 뒤부터 종일 근엄하게 앉아있는 파라오를 떠올리곤 한다. 솔직히 지금 제 상황이 측은하다”면서도 “고급 스파에 앉아있다고 상상하면 마비도 즐길 만하다”고 사람들을 웃겼다.

사실 박사가 기계화된 몸으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때문에 박사 스스로 피터 2.0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며 진화하려 했다. 수술 후 1년간 더욱 정교해진 아바타 시스템을 개발했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음성 기능도 발전했다. 실제로 피터 2.0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음성 시뮬레이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이는 사고로 성대를 잃었거나 루게릭을 앓는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사는 피터 2.0이 인간으로서 끝이 아닌 네오 휴먼으로서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자신이 오래 살아남을수록 비슷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박사는 “제가 낙관적인 가장 큰 이유는 컴퓨팅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 덕에 2년마다 삶을 즐기는 능력이 두 배씩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라며 “2040년이 되면 그 능력은 무려 수천 배로 증폭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력적으로 연구를 거듭하던 피터 스콧 박사는 피터 1.0에 이어 2.0에게도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트위터에 글을 올리며 가족과 동료 학자들, 난치병 환자들, 나아가 인류 전체에 쉬지 않고 메시지를 전했다. 유족은 피터 스콧 박사가 생전 가장 강조했던 이야기를 부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현재 인류는 진화하지 못하는 반면 인공지능(AI)과 로봇은 엄청난 속도로 발달한다. 저는 인류가 진화의 물결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이제 노화와 장애로 삶을 잃어버리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시대에 산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도 이제 AI와 함께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중에는 저처럼 AI와 융합해 인류의 정의를 넓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과 AI가 융합하는 네오 휴먼은 이상적인 자아를 실현하는 일이다. 이것은 먼 미래가 아니라, 불과 수십 년 후 우리의 이야기다.”

zaragd@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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