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인상·공기 연장 반복에도 조합은 방어 수단 없어
지체상금 5% 상한…HUG 보증 회피로 실질 책임 면피
공사비 86% 인상·공기 13개월 연장 사례 발생

14일 업계에 따르면 정비사업에 참여하는 주요 건설사들이 모두 조합에 책임준공확약서를 제출하며 사업 지연 리스크를 분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물산은 ‘공사 중단 사례가 없다’는 주장을 앞세우며 실질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책임준공확약’은 천재지변을 제외하고 시공사가 계약된 공사기간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이나 위약금을 부담하겠다는 계약상 확약이다. 특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받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는 필수 조항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HUG 보증 대신 자체 지급보증을 고수하면서 책임준공확약 제출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있으며, 이를 요구하는 조합에는 입찰 포기 의사를 밝히는 등 사실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이 자체 보증을 고집하는 이유로 ‘업계에서 신용등급이 가장 높아 자금 조달금리가 낮다’는 주장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HUG의 신용등급이 더 높고 수수료를 감안해도 조합에 유리한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문제는 책임준공 확약이 없다는 것을 빌미로 공사비 인상이나 공기 연장이 반복되고, 조합은 이를 방어할 수단이 없어 결국 삼성의 요구를 수용하는 결과로 어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반포3주구 재건축 단지인 ‘래미안 트리니원’이다. 이 사업장은 2020년 계약 당시 8087억원(3.3㎡당 541만원)이던 공사비가 2025년 3월에는 1조 1746억원(786만원), 같은 해 6월에는 1조 2098억원(810만원)으로 총 4011억원(약 50%)이 인상됐다. 공사기간도 34개월에서 40개월로 연장됐다.
래미안 원베일리 역시 2017년 수주 당시 1조 1277억원(3.3㎡당 530만원)이었던 공사비가 2023년 6월에는 1조 2580억원(3.3㎡당 583만원)으로 증가했다. 공기는 조합의 거부로 기존 39개월을 유지했으나, 삼성물산 측은 공기 연장도 요청한 바 있다.
신반포15차 재건축인 ‘래미안 원펜타스’도 공사비가 대폭 인상된 사례다. 2020년 계약 당시 2399억원(3.3㎡당 571만원)이던 공사비는 202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2889억원(687만원)까지 증가했고, 최근에는 추가 100억 원 증액 요구까지 진행 중이다. 공사기간도 36.5개월에서 42.5개월로 늘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이다. 2018년 계약 당시 7458억원(3.3㎡당 510만원)이던 공사비는 2025년 1월 기준 1조 3817억원(847만원)으로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약 86%가 인상됐다. 공사기간도 13개월 늘어난 48개월로 변경됐다.
이 같은 사례는 모두 ‘책임준공확약’이 존재하지 않는 사업장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책임준공이 없으면 시공사가 원가 상승, 자재 수급,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하더라도 조합은 이를 거부할 법적 수단이 없다. 계약 시점의 조건을 시공사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강제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조합은 실질적인 협상력을 상실하게 되며, 주도권은 시공사에게 일방적으로 쏠리게 된다.
또 다른 대체 수단으로 삼성물산은 ‘공사이행확약서’를 제출하고 도급계약서상의 지연배상금 조항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은 낮다. 지연배상금은 하루 단위로 계산되긴 하지만 대부분 ‘총공사비의 5%’ 이내로 상한이 정해져 있다. 이 경우 시공사 입장에서는 급격한 원가 상승이 발생할 경우 일정 기간 공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배상금을 부담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한 구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책임준공확약’이 없으면 조합은 공사 지연이나 조건 변경에 대해 방어할 수단을 잃게 된다. 공사 지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는 고스란히 조합원 개인의 분담금 증가로 이어진다. ‘책임’과 ‘신뢰’를 강조하는 삼성물산이 정작 실질적인 책임을 피하는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합원 입장에서는 이중적인 태도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개포우성7차 재건축 입찰에서도 대우건설은 책임준공확약과 지체상금 무제한 조건을 명시했지만, 삼성물산은 지체상금 5% 한도만을 제시했으며, 책임준공확약은 물론 다른 사업장에선 대체로 제출해오던 공사이행확약서나 책임시공확약서 마저도 제출하지 않았다. 조합의 리스크를 전적으로 회피하면서도 수주는 해야겠다는 이중적인 태도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책임준공확약은 조합이 공사 지연에 따른 리스크를 방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며 “삼성물산이 이를 회피하면서도 ‘신뢰의 삼성’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은 조합 입장에서 매우 모순적인 행보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용승 기자 credit_v@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