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춤은 곧 경계를 만든다. 그러나 경계는 단순히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선이 아니다. 경계가 있다는 것은 그 너머에 아직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라바콘의 신호는 금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멈추게 하고, 바라보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경계는 차단의 끝이 아니라 인식이 시작되는 자리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바콘은 등대와 닮아 있다. 등대는 배를 붙잡지 않지만 멀리서 빛을 보내 위험과 방향을 알린다. 라바콘 역시 직접적인 힘으로 인간을 통제하지 않는다. 색채와 형태, 위치만으로 상황을 전달한다. 특히 주황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즉각적으로 감지되는 기호가 된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보편적 시각언어이며, 위험 앞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지킴이의 신호’다.
최승일의 작업에서 중요한 변화는 이 기능적 신호가 조형적 신호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일상의 작은 라바콘이 거대한 크기로 확대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교통시설로만 볼 수 없다. 원추형의 수직성은 하늘을 향해 상승하고, 넓은 바닥에서 좁은 꼭짓점으로 수렴하는 형태는 시선을 위로 끌어올린다. 주황과 흰색의 반복되는 색면은 강한 리듬을 형성한다. 크기와 비례, 색채와 반복, 수직성과 공간이 결합하면서 기능적 오브제는 하나의 기념비적 현대조각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거대함 자체에 있지 않다. 10미터라는 스케일은 신호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크기를 키운다. 평소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던 사물을 압도적인 존재로 바꿈으로써 작가는 관람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 앞에서 멈추는가. 누가 경계를 만들었는가. 경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그 경계는 우리를 막고 있는가, 아니면 지키고 있는가.
이때 〈보이지 않는 경계〉라는 제목은 작품의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 인간은 수많은 경계 속에서 살아간다. 도로 위에는 보이는 경계가 있지만 사회와 기억, 관계와 시간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도 경계가 있고, 현재와 미래 사이에도 아직 건너지 않은 선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 경계를 끊임없이 넘어간다.
따라서 최승일의 라바콘이 말하는 ‘멈춤’은 정지가 아니다. 잠시 멈추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앞으로 향할 방향을 확인하는 행위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를 바라보는 순간이다. 멈춤은 단절이 아니라 다음 움직임을 위한 사유의 시간이며, 경계는 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접점이 된다.
현대미술에서 이 라바콘이 조형적 언어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은 “넘어가지 말라”는 명령을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안전을 위한 산업적 기호가 인간의 삶과 사회, 시간에 관한 철학적 기호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최승일의 〈보이지 않는 경계〉는 신호에서 경계로, 경계에서 사유로, 사유에서 소통으로 확장되는 조각이다.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알리고, 현재의 신호를 미래로 보내는 거대한 시각언어다.
경계는 우리를 멈추게 하지만, 예술은 그 멈춤에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사유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새로운 길이 된다.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