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한 행동 자체는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권유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부터 살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라 상대방이 먼저 접근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단순한 변명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마약을 사고팔았는가’만이 아니다. 범죄가 어떤 과정에서 발생했는지,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역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약범죄 수사에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이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마약범죄 수사에도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가 도입된다.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들이 통합 심사된 뒤 개정법이 2026년 5월 26일 공포됐고, 공포 후 1년이 지난 2027년 5월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수사관은 일정한 요건 아래 자신의 실제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마약범죄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가상의 신분을 이용해 마약류의 매매·소지·광고·수수·운반·수입 등에 관여하는 방식의 수사도 가능해진다.
필요한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위장 신분에 필요한 문서나 전자기록 등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비대면 거래와 텔레그램 등 온라인을 이용한 마약 유통이 확산된 현실을 고려하면 수사기관 입장에서 위장수사는 상당히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강력한 수사수단에는 그만큼 명확한 경계가 필요하다. 그 경계가 바로 ‘범죄를 적발한 것인가, 아니면 범죄를 만들어 낸 것인가’라는 문제다.
우리 법원이 함정수사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보는 기준 중 하나가 이 차이다. 이미 마약을 판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수사관이 구매자로 접근해 거래의 기회를 제공했다면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수사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원래 범행 의사가 없던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지속적으로 접근하거나 회유·설득하고 특별한 조건까지 제시해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른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가 문제되는 영역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마약을 팔 사람을 찾아낸 것과, 마약을 팔 생각이 없던 사람을 마약 판매자로 만들어 낸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구별은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위법한 함정수사로 판단된다면 단순히 형량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형사절차 자체의 적법성이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장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변호인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사기관의 역할이 더욱 적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전형적인 마약 함정수사를 생각하면 수사관이 구매자로 가장해 마약 판매자에게 접근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 아래에서는 상황이 훨씬 복잡해질 수 있다. 수사기관이 위장 신분을 이용해 마약 판매 또는 거래가 가능한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광고와 거래 과정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중요한 질문들이 등장한다. 마약 판매 광고를 보고 연락한 사람이 과연 이전부터 확정적인 구매 의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수사관이 먼저 가격이나 수량을 제시하지는 않았는가. 대상자가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반복적으로 거래를 권유하지는 않았는가. 통상적인 시장가격보다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지는 않았는가. 수사관 또는 정보원이 장기간 관계를 형성하며 거래를 압박하지는 않았는가.
결국 위장수사 사건에서는 누가 먼저 범행을 제안했는지와 피의자가 접촉 이전부터 어느 정도의 범의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피의자·피고인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자신이 수사기관의 유도에 의해 범행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곧바로 함정수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 사건에서는 거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복원해야 한다.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 최초 메시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제안했는지, 자신이 처음에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몇 차례 연락이 이어졌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자료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확보할 필요가 있다. 텔레그램·카카오톡·문자 등 전체 대화 내용, 통화내역, 계좌거래 기록, 거래 장소를 정하는 과정, 상대방이 먼저 제안한 가격과 수량, 최초 접촉 시점 이전의 행동과 거래 내역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먼저 수차례 마약 거래를 권유했고 피의자가 반복적으로 거절한 기록이 있다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수사관이 접근하기 전부터 피의자가 여러 사람에게 마약 판매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면 함정수사를 주장하기는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함정수사 여부는 한두 문장이 아니라 범행이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마약 위장수사 사건에서 변호인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 역시 최초 접촉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먼저 상대방을 찾았는가. 어떤 정보를 근거로 수사 대상자로 특정했는가. 첫 번째 거래 제안은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피의자는 곧바로 응했는가, 아니면 거절하거나 망설였는가. 수사관은 그 이후 어떤 말을 했는가. 거래 금액이나 수량을 확대하도록 유도하지는 않았는가.
이런 사실들이 모여 적법한 ‘기회 제공’이었는지, 아니면 범의를 만들어 낸 ‘범의 유발’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위장수사가 개입된 사건이라면 단순히 마약이 발견됐는지, 거래가 성립했는지만 보고 사건을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마약이 발견되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변호인의 입장에서 앞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도 여기에 있다. 피고인이 함정수사를 주장하려면 수사기관의 최초 접근부터 거래가 성립할 때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위장수사의 특성상 상당 부분은 수사기관 내부에서 진행된다.
수사 대상자를 왜 특정했는지, 수사관에게 어떤 지시가 내려졌는지, 몇 차례 접촉했는지, 어떤 방법까지 허용됐는지 등의 자료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거나 공개되지 않는다면 피고인이 이를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면 구조적으로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국가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피고인은 그 정보를 알 수 없는데, 피고인이 오히려 “국가가 나에게 범의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위장수사 제도에서 기록은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다.
방어권의 핵심이다. 최초 수사 착수의 근거, 대상자 선정 과정, 수사관과 대상자 사이의 접촉 내용, 지휘·승인 과정, 거래 제안과 조건 변경 등의 내용이 일정한 방식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필요한 경우 법정에서 그 기록을 검증할 수 있는 절차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수사과정이 기록되지 않는다면 적법한 기회제공과 위법한 범의유발을 사후에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
피의자 입장에서도 위장수사 사건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어차피 거래한 것은 사실이니까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해 수사 초기부터 거래 결과만 진술해버리면 나중에 거래가 형성된 과정을 다투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이 먼저 접근했거나 지속적으로 거래를 권유했던 사건이라면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진술해야 한다. 대화방이나 메시지를 임의로 삭제해서도 안 된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했던 대화가 오히려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유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약사건에서는 압수된 마약의 양이나 횟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누가, 어떻게, 왜 이 거래를 시작하게 했는가’ 역시 중요한 방어 쟁점이 될 수 있다.
위장수사의 법제화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마약 유통이 온라인과 비대면 방식으로 변화하고 조직이 점점 더 은밀해지는 상황에서 신분을 공개한 수사만으로 범죄를 적발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수사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수사의 경계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국가는 이미 존재하는 범죄를 발견하고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범죄자가 아닌 사람에게 범죄의사를 만들어 내고 그 결과를 처벌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따라서 앞으로 마약사건에서 변호인이 물어야 할 질문도 달라질 것이다.
“피고인이 마약을 거래했는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래를 시작하게 만든 사람은 누구였는가”까지 확인해야 한다. 수사기관에게 강한 권한을 부여할수록 그 권한의 행사 과정은 더 정확히 기록되어야 하고 법정에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사기관도 정당한 수사를 보호받고, 억울하게 범의가 유발됐다고 주장하는 피고인도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27년 5월 시작될 마약 위장수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강력한 수사기법만이 아니다. 범죄를 적발하는 국가의 권한과 시민의 방어권 사이에 어디까지 선을 그을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기준이다. 그 선을 법정에서 확인하고 다투는 것이 앞으로 마약·형사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인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도움말 법무법인 세담 황세영 변호사
비욘드포스트 김신 기자 bp_ks@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