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 가득 찬 '리더풀 조직(Leaderful Organization)'을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 현장을 방문하다 보면 경영자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듣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조직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리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리더의 자질을 갖춘 이는 많은데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차단된 경우에 가깝다.
사장은 회사의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고 믿고, 직원들은 “사장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며 순응한다. 문제가 발생하거나 고객의 요구가 있을 때, 심지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기준은 항상 ‘사장의 지시’다. 이런 조직에서 사장은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기이하게도 회사가 성장해 규모가 커질수록 사장의 업무는 가중되고 직원들의 수동성은 더욱 짙어진다.
회사의 외형은 성장했지만, 조직 내 리더십의 총량은 성장하지 못한 탓이다. 이제 기업이 마주해야 할 화두는 “누가 리더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구성원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 1인 리더 체제 vs 리더로 가득 찬 조직
조직행동론 분야에는 ‘리더풀 조직(Leaderful Organiz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조셉 A. 레이린(Joseph A. Raelin)은 리더십을 특정 직위에 있는 단 한 사람의 역할로 한정하지 않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함께 수행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즉, 소수가 순서대로 리더 역할을 교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구성원이 각자의 업무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조직이다.
‘리더리스(Leaderless)’가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방임 상태라면, ‘리더풀(Leaderful)’은 주도성과 책임감으로 가득 찬 상태를 뜻한다. 리더리스 조직에서는 모두가 방관자가 되지만, 리더풀 조직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영역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고객을 가장 잘 아는 현장 직원이 고객 대응의 리더가 되고, 생산 공정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가 생산 문제의 리더가 된다. 직급과 무관하게 해당 사안에 가장 높은 전문성을 지닌 이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리더풀 조직이 ‘경영자가 필요 없는 조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명확한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은 그 테두리 안에서 각자의 리더십을 십분 발휘하는 구조다.
네덜란드의 방문 간호 기업 ‘뷔르트조르흐(Buurtzorg)’는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자율경영 사례다. 이곳의 간호사들은 소규모 자기관리팀을 꾸려 환자 돌봄은 물론 일정 조정, 채용, 업무 방식 등 핵심 의사결정을 스스로 내린다. 중간관리자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해 스스로 판단하게 한 것이다. 리더십의 무게 중심이 위에서 아래로 이동한 셈이다.
데이비드 마퀘트(David Marquet) 전 미 해군 함장이 이끈 핵잠수함 ‘산타페(USS Santa Fe)’ 역시 동일한 원리를 보여준다. 그는 상명하복의 전통적 지휘 체계를 탈피하고, 승조원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권한을 분산시켰다.
핵심 원칙은 명료했다. “정보가 있는 곳으로 권한을 이동시켜라.” 현장보다 윗선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에는 명령과 통제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고객과 기술, 시장의 변화가 가장 먼저 감지되는 곳은 언제나 현장이다. 모든 의사결정을 통제하는 과거의 방식은 현장에 축적된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 어떻게 '리더로 가득 찬 조직'을 만들 것인가
그렇다면 조직을 어떻게 리더풀 상태로 전환할 수 있을까.
첫째, 권한과 책임을 반드시 함께 위임해야 한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알아서 해보라”고 내버려 둔 채 결과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위임이 아니라 방임이다. 의사결정의 권한 범위와 그에 따른 책임을 투명하게 규정해야 한다.
둘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리더십의 출발점은 정보다. 매출, 원가, 고객 데이터, 시장 동향 등 조직 운영에 필수적인 정보가 경영진에게만 머물러 있다면, 구성원에게 주도적인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져야 비로소 책임감 있는 행동이 뒤따른다.
셋째, ‘허락을 구하는 조직’에서 ‘판단하고 보고하는 조직’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이거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이 반복되는 조직은 리더십이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는 증거다. 이를 “제 판단으로는 이 방식이 최선입니다. 이렇게 추진하되, 이런 리스크를 대비하겠습니다”라는 능동적인 보고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직책이 아닌 ‘전문성과 상황’에 따라 리더가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모든 문제를 팀장이나 임원이 해결할 수는 없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실무 전문가가 유연하게 리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다섯째, 실패를 문책하기보다 판단의 질을 높이는 학습 기회로 삼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잘못 판단했을 때 질책이 쏟아진다면 결국 모두가 “시키는 일만 하겠습니다”라고 물러서게 된다. 실수를 비난하기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건설적인 피드백 시스템이 필요하다.
◆ 변화의 시작, 경영자의 역할 재정립
리더풀 조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역설적이게도 직원이 아닌 경영자 자신일 수 있다. 경영자가 사사건건 개입하고 통제하려 든다면 구성원의 자율성은 결코 자라날 수 없다.
경영자가 “이걸 왜 당신 마음대로 결정했어?”라고 다그치는 대신,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묻기 시작할 때 직원의 태도는 달라진다. “제가 책임지고 추진해 보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는 순간, 조직에는 새로운 리더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주도적인 구성원이 열 명, 백 명으로 늘어날 때 조직은 비로소 근본적인 혁신을 맞이한다.
◆ 미래의 경쟁력, ‘위대한 한 명’을 넘어선 '주도적 집단'
과거에는 탁월한 CEO 한 명의 직관과 결단력이 회사를 견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지식이 고도화·분산된 현대 사회에서, 경영자 한 사람이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정답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 기업의 생존 조건은 ‘위대한 리더 한 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을 갖춘 구성원들의 집단’을 육성하는 것이다. 경영자가 모든 해답을 쥐고 있는 조직에서 경영자는 곧 성장의 병목(Bottleneck)이 된다. 반면, 구성원 모두가 문제를 발견하고, 주도적으로 판단하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조직은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대한 시너지를 창출한다.
기업의 진정한 성장은 단순한 직원 수나 매출의 증대가 아니다. 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리더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경영자의 핵심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지시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주도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게 할 것인가?”로 말이다.
한 명의 리더가 조직을 이끄는 낡은 시대에서 벗어나 리더로 가득 찬 조직을 육성하는 시대로의 전환, 그것이 현시대 경영자들이 짊어져야 할 리더십의 참된 본질이다.
bjlee@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