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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이제 보니 눈치가 없었네

이순곤 기자

입력 2026-09-29 06:58

[신형범의 千글자]...이제 보니 눈치가 없었네
“권력은 힘이 센 약물 같은 겁니다. 한번 잡게 되면 뇌가 바뀝니다. 다른 사람에 공감하지 않고 실패를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되며 자기애(自己愛)에 빠져 오만하게 됩니다. 또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집니다.”

아일랜드 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의 말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지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속성이 그러니 유념하라는 경고쯤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나는 살면서 권력을 잡아 본 적도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지만 권력에 대해 나름의 평가는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권력의 부패나 타락 가능성을 보는 눈은 권력 내부나 근처에 있는 사람보다 더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권력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람을 안다는 것》에서 사람을 디미니셔와 일루미네이터 두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디미니셔(diminisher)가 자기 능력을 과신하며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는 사람이라면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는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협력을 모색하는 유형입니다.

그러면서 일루미네이터가 되는 것은 일종의 기술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애를 써야만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태도를 한국사람은 ‘눈치’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입니다. 쥐꼬리 만한 권력이라도 갖게 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에 상관없이 행동하는 걸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뻐기는 사람이 많은데 제발 윗사람 눈치만 보지 말고 수평적인 눈치, 특히 아랫사람의 눈치도 좀 보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전임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대통령이라는 권력이 상황을 악화시킨 면이 있겠으나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검사 시절에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자 치명적인 결함이 드러났습니다. 그가 나름의 원칙과 정의감 때문에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유린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민심의 눈치마저 볼 수 없는 ‘눈치맹’이었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는 데는 축복이던 특성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치명적 결점으로 바뀌었으니 본인도 아마 헷갈렸을 것입니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살면서 눈치 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귀를 열면 됩니다. 눈치 빠른 사람이 해주는 말을 귀담아들으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귀는 있지만 듣지 못하고 아예 들을 생각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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