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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이순곤 기자

입력 2026-08-27 06:49

구글이미지 캡쳐
구글이미지 캡쳐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본명 대신 메리 웨스트메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봄에 나는 없었다》는 작가 스스로가 “완벽하게 만족한 소설이자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단 3일 만에 수정 없이 완성했다”고 밝힌 심리소설입니다.

주인공 조앤은 유능한 변호사 남편과 반듯한 자녀를 둔, 부유하고 안정된 가정에서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 여인입니다. 이라크에 사는 딸을 만나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와 홍수로 사막 한가운데 외딴 기차역에 발이 묶입니다.

출발하기 전 우연히 만난 동창 블란치가 던진 묘한 말 몇 마디를 기억하며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숙소에서 생전 처음으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처음에는 평화롭고 안락한 고립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앤은 완벽한 행복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삶을 차분히 되짚어보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조앤의 독선적인 태도에 질려 있었고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한 게 아니라 피하고 두려워했으며 도망치듯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화할 사람도, 읽을 책도 없는 극한의 고립 속에서 조앤은 평생 외면해 왔던 가족들의 진심과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사람인지 돌아보면서 극심한 고통과 혼란을 겪습니다.

조앤은 자신이 가족 위에서 군림하며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참회하면서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 조앤은 그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음 속 깊이 묻어버립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우아하고 완벽한 가식의 가면을 쓴 채 스스로 만든 안전한 성으로 돌아갑니다.

1944년에 나온 책이지만 요즘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 심리 묘사가 세련됐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한두 시간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오래 공들여 책으로 읽는 이유는 글자와 글자 사이를 헤집으며 소설 속에 나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를 돌아보기 위해 문학작품을 읽습니다. 세상을 느끼고 배우기 위해 소설을 읽습니다. 인생의 많은 교훈은 정직하게 살아라, 베풀며 살아라,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라 같은 한 문장으로도 충분하지만 책을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묵직함 때문에 무더운 날씨에도 굳이 한 권의 책을 읽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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