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와 함께 경상남도 진해를 방문한 함익병은 “슬레이트 집에서 연탄 한 장으로 하루를 보내고 탄약통에 뜨거운 물을 넣어 품에 안고 잤다”며 혹독한 겨울나기만큼 녹록지 않았던 생활을 털어놓았다.
“아버지께서는 교사였지만 장남으로서 할머니와 여섯 동생을 모두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늘 어려웠다. 어머니가 생밤까기, 담요 장사, 뜨개질 등 닥치는 대로 일하셔서 버텼다”고 설명했다.
함익병은 "어렸을 때 내내 먹은 보리밥은 물론, 당시 귀한 음식이었던 자장면을 먹을 기회가 생겨 급하게 먹다 심하게 체해 지금도 자장면을 못 먹는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함익병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모범생이었던 아들이 학급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에도 기쁨보단 부담이 앞섰다”며 가슴 아파 했다.
당시는 학급 반장 집에서 학급에 필요한 비용을 후원하던 때로, 형편이 어려우면 반장을 시키지 않는 선생님이 다수였기 때문. 하지만 송진학 선생님은 싫은 내색 없이 학급반장 함익병에게 어떠한 재정적 부담도 주지 않았고 편견 없이 학생들을 대하던 올곧은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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