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최근 예술계는 레트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현대 여성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 신비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동양화부터 1980~90년대 스타일의 영화 포스터 그리고 추억의 8비트 픽셀 아트와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인 우주 소년 아톰 오브제까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며 세대를 넘나드는 폭 넓은 공감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 3인과 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통 동양화와 현대 미술의 뜻밖의 만남! 신영훈
사진 = 신영훈, Director’s Cut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양화 속 여성 이미지는 고이 빗어 쪽을 진 머리에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하지만 동양화 작가인 신영훈의 개인전 <은유적 클리셰>(2017)는 이런 고정관념을 과감히 깬 현대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마치 동양화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 천사 날개를 단 옷이나 가느다란 끈의 속옷만 걸치고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한 곳을 응시하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뿐만 아니다. 신영훈 작가의 동양화는 인물의 현대화를 넘어 종이, 붓, 먹이라는 수묵이 지닌 재료의 속성 역시 현대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풀어낸다. <Director’s Cut >(2019) 개인전은 한지 대신 대형 광목천을 캔버스로 활용해 모던한 느낌을 강조했으며, 먹에 물감을 섞어 그려낸 풍경으로 수묵화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런 전통과 현대의 새로운 접목은 다양한 문화 업계의 협업 프로젝트를 이끌어냈고 역사소설 <초한지>의 표지 일러스트 작업부터 LS일렉트릭의 그린에너지 사업을 산수화에 녹여낸 ‘LS일렉트릭 산수화’ 시리즈,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아트웍, <해적>의 수묵화 포스터 등으로 과거와 현대를 잇는 신선한 작업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과거에서 찾은 현재, 레트로 아트를 선보이는 사우스빅
사진 = 사우스빅, 겨울왕국 레트로 포스터
레트로가 자신이 살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그 시대에 유행했던 것들을 다시 꺼내어 그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같은 과거지만 이를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는 신상품과 같이 새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대현 작가는 싸우스빅(Southbig)이라는 활동명으로 이런 뉴트로 작업을 진행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영상 프로듀서다. 경희대 예술디자인 대학에서 디지털 콘텐츠학을 전공하고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레트로 포스터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복고’의 매력에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뉴트로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과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무인도의 비밀>을 1980~90년대 스타일로 재해석한 레트로 포스터 시리즈를 선보여 많은 세대에게 큰 공감대를 얻었다. 이후 좀 더 넓은 글로벌로의 확장을 위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8비트 픽셀의 영상 작품을 이어나갔다. 더 나아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OST <We all lie>와 밴드 혁오의 <위잉위잉> 등 현대 대중음악에 과거 게임보이에서 봄직한 픽셀 아트를 더해 사운드빅만의 레트로 작품 세계를 확고히 다졌다. 2017년부터는 일러스트레이터 현영과 함께 스튜디오이자 브랜드 ‘오빠누나문방구’를 운영하며 다른 스타일의 새로운 레트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추억의 아톰을 되살려 행복을 공유하는 작가, 허명욱
사진 = 파리 메종오브제 부스 전경 (프린트베이커리 제공)
허명욱 작가는 금속공예가이자 사진가, 화가, 설치미술가 등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하에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런 편견 없는 작업 방식은 7살 어린 시절의 순수함에서 비롯된다. 대표작 역시 우리를 한 순간에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아톰 오브제 시리즈다. 어린 시절 작가는 유독 아톰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어린 그를 위로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나 다름없었다. 허명욱 작가는 조형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톰을 다시 끄집어내 오브제로 부활시켰다. 그가 어릴 적 아톰과 함께 느낀 충만한 행복을 관객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다. <수집이 창조가 될 때>라는 타이틀로 진행한 그의 전시는 마치 소년 허명욱의 감성이 그대로 투영된 듯 시간이 멈춰진 공간의 낯섦과 새로움이 공존했다. 여기서 아톰은 소년 허명욱의 자신이자 수집의 첫 대상이었다. 소년 아톰은 7~8세 자신의 어린 자화상에 아톰 머리 모양의 투구를 씌운 작품이다. 환하게 웃는 미소에서는 순수함이 가득 묻어나며 이를 보는 관객에게도 어린 시절의 행복한 순간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어릴 적 아톰을 통해 느낀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허명욱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