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는 엄밀히 말하면 ‘혼인 외의 출생자’로, 어머니의 성(姓)과 본(本)을 따르게 되며 법률상 어머니와 모자(母子) 관계가 형성되지만 아버지와는 법률상 부자(父子)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혼 해소 시,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등 법적 책임을 요구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사실혼 관계에서 출생한 자의 생모는 그 자의 생부를 상대로 자녀의 양육자 지정이나 양육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달라는 청구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실혼 관계에서 자녀가 출생한 경우, 이 자녀의 양육은 오롯이 생모만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인 것일까?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와 생부 사이에 법률상 부자(父子) 관계가 형성되기만 한다면 사실혼 해소 시 생부에게 양육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렇게 사실혼 관계의 자녀와 생부 사이의 법적 부자 관계를 마련하는 방법이 바로 인지 제도다.
인지 제도는 쉽게 말해 생모의 자녀를 생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는 방법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자녀가 태어났을 때 생부가 자녀를 인지하여 친생자로 신고하는 것이다. 자녀의 출생 이후 인지신고를 진행한 사실혼 가정이라면 사실혼을 해소하는 때에 생부를 상대로 양육권 지정이나 양육비 청구 등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로 인지청구소송을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인지신고를 하지 않고 생활하다가 사실혼이 파탄에 이른 상태라면 생부가 자녀의 인지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에는 자녀 등이 생부를 상대로 인지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인용 판결을 획득하여 자녀와 생부 사이의 법적인 부자 관계를 확립한 뒤, 양육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인지 청구 소송은 자녀나 그 직계비속, 법정대리인이 제기할 수 있다. 생부가 생존한 동안이라면 언제든 제기할 수 있으며 생부가 사망한 뒤에는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제기해야 한다.
사실혼 관계가 완전히 해소된 이후에도 인지청구 소송을 통해 인용판결이 확정되기만 한다면 해당 자녀가 출생한 때부터 생부와 친자 관계가 성립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 동안 받지 못한 양육비를 모두 청구할 수 있다. 만일 생부가 양육비 지급을 거부한다면, 양육비 지급을 촉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활용해야 한다.
로엘법무법인의 이원화 이혼전문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혼 관계인 부부에게 법률혼 부부 못지 않게 다양한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나 애석하게도 자녀의 양육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지 신고나 인지 청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양육비는 자녀의 복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므로 생모 등 법적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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