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배우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5230831360825246a9e4dd7f12113115985.jpg&nmt=30)
‘부고(訃告) :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
“… 올해 여든세 살, 나의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장례식은 엄숙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을까요. 오늘만큼은 다릅니다. 당신은 우는 대신 웃어야 합니다. … 꽃은 필요 없습니다.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이것은 작별이 아니라 쉼이며 끝이 아니라 막간이니까요. … 연극배우 박정자 올립니다.”
박정자는 요즘 《청명과 곡우 사이》라는 늙음과 죽음에 관한 영화를 찍고 있는데 강릉 해변에서 극중 장례식과 마지막 장면 촬영을 함께 해달라고 친구와 지인들을 초청했고 지인들은 박정자의 ‘생전장례식’에 초대된 것입니다.
생전장례식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내가 아는 것만도 여럿입니다. 2017년 일본 건설기계기업 고마쓰 사장을 지낸 안자키 사토루는 담낭암 진단을 받고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도쿄의 한 호텔을 빌려 지인들을 초청해 장례식을 열었습니다. 안자키 전 사장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었다. 살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악수를 나눌 기회가 있어 만족한다”며 소감을 전했습니다.
안자키 사장 외에도 일본은 전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 같은 유명인도 생전장례 행사를 열었습니다. 특히 이노키의 ‘이별파티’는 일본의 슈가츠(終活: 인생의 마무리 활동)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알려진 사례가 제법 있습니다. 2023년 6월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서경대 교수를 지낸 서길수 교수의 ‘살아서 하는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서 교수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삶을 마감할 것인지와 가족들에게 부탁하는 장례절차를 미리 공개하고 자신의 저서와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또 2018년 전립선암 판정을 받은 김병국씨는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라는 제목으로 지인들을 초대해 생전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죽은 다음 장례는 아무 의미 없다. 임종 전에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을 입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자”고 자신의 부고장에 적었습니다.
생전장례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죽은 다음에 요란하게 장례를 치러봐야 자신은 알지도 못하고 정신이 온전할 때 친구와 친척, 지인들을 만나 기억을 나누겠다는 의지입니다. 또 애도는 없고 형식만 남은 허례뿐인 장례식과 검은 옷과 조화, 조의봉투로 상징되는 장례문화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말이 쉽지 생전장례식을 실행하기 위해선 사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선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죽음을 터부시하고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는 냉철한 이성도 갖춰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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