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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호주제가 뭐죠?

입력 2025-06-17 08:21

[신형범의 千글자]...호주제가 뭐죠?
요즘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졌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호주제’라는 게 있었습니다. 호주제는 쉽게 말해 가족관계를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가족을 대표하는 남성 가장이 재산의 처분 등에 대해 우월한 권리를 갖고 호주 승계순위도 아들 – 딸 – 아내 – 어머니 – 며느리 순으로 규정해 (남성)호주 중심의 가족구조를 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들이 아무리 어려도 어머니 누나 할머니에 앞서 호주가 됩니다. 게다가 부모가 이혼해도 친아버지의 성을 무조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재혼해서 같이 살아도 새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없어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성 입장에서 호주제는 여성을 차별하는 악법입니다. 남성 관점에서도 호주는 무조건 남자여야 한다는 불필요한 짐을 지우고 자녀에게는 편견과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 사고를 하는 남성이라면 호주제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성단체, 법조계, 학계 등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호주제 폐지 운동을 시작하자 유림들은 집안이 콩가루가 된다며 격렬히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나중에는 호주제 폐지 운동하는 사람들을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몰이’까지 했지만 이런 극단적 논리는 사람들의 반감만 살 뿐이었습니다. 반면 여성단체와 활동가들은 수십 차례 토론회와 간담회를 거치면서 호주제가 얼마나 부당하고 야만적이며 비합리적인지를 밝혀냈습니다.

국제법률과 제도, 사회문화적 연구를 통해 체계적인 논리를 쌓는 한편 급기야 과학자에게도 의견을 물었습니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은 의견서에다 자연계 어디에도 수정과 발생에서 수컷이 주도권을 쥔 생물이 없으며 생물학적 족보는 부계보다 오히려 모계혈통이 더 설득력 있고 과학적이라고 써서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전통적 통념을 깨는 근거를 제시한 과학자의 의견서는 호주제를 폐지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최재천 교수 본인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호주제 폐지를 자신의 빛나는 업적 중 하나라고 자랑합니다. 결국 2005년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양성평등 원칙에 반한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제도로써 호주제는 없어졌지만 전통관습과 인식의 변화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영역이 많습니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젠더감수성의 일상화, 가족 형태 다양성의 허용 범위 등 제도는 시작일 뿐 문화와 사람들 생각의 변화는 시대정신에 맞게 지속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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