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포토에세이]...백석의 여인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6230813210043646a9e4dd7f220867377.jpg&nmt=30)
백석이 박경련을 처음 본 건 친구 허준의 결혼식 모임에서입니다. 당시 백석은 스물넷, 열여덟 살 이화여고생 박경련을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경상도 통영 출신 박경련을 백석은 ‘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백석은 청혼하지만 란의 부모는 조선일보에 같이 근무하는 백석의 친구 신현중에게 백석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신현중은 백석이 가난하고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며 친구를 좋게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 때 신현중은 약혼 중이었는데 파혼하고 자기가 박경련과 결혼합니다. 박경련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백석은 통영을 여러 번 찾았습니다. 통영을 오가며 느꼈던 애틋한 감정, 사랑을 빼앗긴 실연의 아픔과 친구에 대한 배신감 등이 《통영》이라는 시 세 편에 알알이 맺혀 있습니다.
진향(眞香)이라는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백석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흥의 영생여고보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일 때 회식 자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진향은 열여섯에 집안이 망해 권번에 들어가 기생 수업을 받았는데 진향은 기명이고 이름은 김영한입니다. 김영한은 춤과 노래는 물론 문재도 뛰어난 인텔리였는데 당시 조선어학회 신윤국이 김영한을 일본으로 유학시키고 후원합니다. 독립운동하던 신윤국이 일본군에 체포돼 함흥에 투옥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영한은 도쿄에서 귀국해 함흥에서 신윤국의 옥바라지를 하다가 백석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회식자리에서 눈이 맞은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때 백석은 스물여섯, 자야는 스물넷. 후에 서울로 간 자야를 쫓아 백석도 서울로 가 두 사람의 동거는 3년 가까이 이어집니다. 둘은 사랑했지만 자야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백석의 집에서는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고 백석을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시킵니다.
백석과 자야의 관계는 흐지부지되고 김영한은 후에 요식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됩니다. 평생 백석을 잊지 못한 김영한은 1995년 당시 1천억원이 넘는 전 재산을 종교에 기탁했는데 당시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1천억이면 큰돈인데 아깝지 않았냐고 묻자 유명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그깟 1천억,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1940년 스물여덟 살 백석은 혼자 만주로 떠났다가 광복 후 고향인 평안도 정주로 돌아와 북한에 남았고 그것으로 남한 여인들과의 인연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1995년에 83세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남자와 연인 관계였던 두 여인이 나란히 앉아 한 곳을 바라보는 일이 현실에선 없겠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주인공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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