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낮추겠다”는 명분…업계는 R&D 위축·환자 피해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약 제품에 대해 최대 250%의 관세를 예고했다. 이는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관세율 중 가장 높은 수치다. CNBC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스쿼크 박스(Squawk Box)’ 인터뷰에서 “초기에는 소폭의 관세를 부과하고, 1년에서 1년 반 안에 150%, 이후 최대 250%까지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의 목적이 “미국 내 약값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5월 부활시킨 ‘가장 유리한 국가(Most Favored Nation)’ 정책과 연계해, 미국 내 약가를 해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해당 정책은 일부 약가를 유럽과 캐나다 등 타국보다 높게 책정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조치다.
하지만 업계의 반발은 거세다. 미국 제약업계는 고율 관세가 실현될 경우 원가 부담으로 약값이 오히려 상승하고, 공급망 불안정과 연구개발(R&D)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시작한 ‘섹션 232 조사’는 의약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절차로, 이를 근거로 관세 부과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27일, EU산 의약품에 대해 15% 관세를 부과하는 데 합의했다. EU는 “15%가 명확한 상한선”이라고 선을 그은 반면, 미국은 여전히 섹션 232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를 검토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250% 언급은 EU와의 합의 직후 나온 것이어서, 무역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는 유럽발 의약품의 미국 수출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약전(US Pharmacopeia) 기준으로 브랜드 의약품 활성성분의 약 43%가 유럽에서 생산된다. 특히 휴미라, 키트루다, 오젬픽 등 주요 의약품 상당수가 유럽에서 제조돼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유럽 제약산업협회(EFPIA)는 “이번 조치가 환자 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과학기술 기반의 신약 개발 환경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자국 중심의 산업 재편을 가속화하려는 행보로도 읽힌다"며 "관세 폭탄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은 물론 글로벌 제약 공급망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균 기자 jklee.jay526@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