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은 시스템은 리더를 도울 수 있을 뿐, 리더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이 막을 내리자, 다시 '리더십'이 화두로 떠올랐다. 조직의 성과가 무너질 때마다 우리는 흔히 시스템과 환경을 먼저 탓하곤 한다.
선임 절차, 지원 부족, 혹은 구조적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종종 위험한 오해로 이어진다. "결국 시스템 탓이라면, 리더 한 사람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닌가"라는 착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반대다. 완벽한 환경을 갖춰줄 수는 있어도, 그 위에서 90분의 흐름을 읽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것은 끝내 리더 한 사람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이번 월드컵은 바로 그 '리더'라는 자리의 무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 같은 그라운드, 다른 90분
뛰는 선수는 같다. 전력 분석 자료나 훈련 시간도 다른 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같은 자원을 쥐고도 어떤 팀은 무너지고 어떤 팀은 살아난다.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은 벤치에 앉은 리더, 단 한 사람의 판단에서 갈린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수준의 인력과 자본, 유사한 시장 조건을 가진 두 회사가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하는 장면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한다. 풍부한 자원이 곧바로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자원을 '어느 순간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 중대한 판단의 중심에 리더가 존재한다.
◆ 결정은 위임되지 않는다
경기 중 선수를 교체할지, 전술을 수정할지, 한 골을 더 노리기 위해 공격할지, 아니면 수비로 버틸지. 이 모든 결정은 코치진의 회의나 축적된 데이터로 온전히 대신할 수 없다. 정보는 공유할 수 있지만, 결정에 따른 책임은 결코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경영자의 자리도 궤를 같이한다. 수많은 보고서가 올라오고 다양한 의견이 교차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확정 짓는 순간 그 책임은 오롯이 최고 결정권자 한 사람에게 모인다.
위임할 수 있는 일과 끝내 위임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리더는 두 가지 함정 중 하나에 빠지게 된다. 모든 권한을 혼자 틀어쥐어 조직을 질식시키거나, 정작 본인이 내려야 할 중대한 결정을 회의라는 방패 뒤로 숨기거나 둘 중 하나다. 리더의 첫 번째 책무는 자신의 책상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결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 리더의 표정이 곧 팀의 체온이다
위기의 순간, 선수들은 그라운드의 상황을 살피는 동시에 벤치의 기류를 읽는다. 감독이 흔들리면 그 불안한 동요는 순식간에 22개의 다리로 전이된다. 반대로 감독이 침착함을 유지하면, 무너지던 경기력도 다시 중심을 잡는다. 리더의 감정은 결코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조직 전체로 흘러 들어가는 강력한 공적 신호다.
회사 조직에서도 실적이 꺾이고 시장 상황이 악화될 때, 직원들은 재무제표의 숫자보다 경영자의 얼굴을 먼저 살핀다. 리더가 불안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 조직은 몸을 사리게 되고, 리더가 굳건히 중심을 잡으면 조직은 다시 호흡을 고르고 일어선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리더의 언어와 태도가 곧 조직 전체의 체온을 결정짓는다.
◆ 신뢰는 권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
직책은 구성원에게 명령할 '권한'을 부여할 뿐, 자발적으로 따르고 싶은 '마음'까지 쥐여주지는 않는다. 선수가 감독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한 발 더 뛰는 이유는 감독의 완장 때문이 아니라, 그가 평소 보여준 일관성과 책임감 때문이다.
특히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기꺼이 앞으로 나서서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리더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록 외부 환경이 온전한 정당성을 부여해주지 못한 상황일지라도, 끝내 무너진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리더 자신의 진정성 있는 행동뿐이다.
◆ 그래서 경영자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이 모든 논의는 결국 다음의 세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첫째, '오직 나만이 내려야 할 결정은 무엇인가.' 적절한 위임의 기술만큼이나, 끝까지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짊어질 용기가 진정한 리더를 만든다.
둘째, '위기 상황에서 나는 조직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조직 구성원은 리더의 백 마디 말보다 리더의 표정과 태도를 먼저 믿는다.
셋째, '나는 진정으로 따를 만한 리더인가.' 직책과 권한은 임명장으로 생겨나지만, 굳건한 신뢰는 매일의 일관된 행동이 쌓여야만 완성된다.
◆ 리더는 변명할 수 없는 자리다
외부 환경이 흔들렸다는 사실이 리더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리더를 받쳐주는 시스템이 부실할수록 리더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역설적으로 더욱 무거워진다. 좋은 시스템은 리더의 결정을 도울 수 있을지언정, 리더의 존재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홍명보 감독의 월드컵이 오늘날 기업 경영자들에게 남긴 질문은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묵직하다. 당신은 지금, 오직 당신만이 앉을 수 있는 그 책임의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는가.
리더는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온전히 책임지는 자리다.
bjlee@beyondpost.co.kr
























